[문학예술]몽골서 읊조린 ‘한국인의 자화상’…‘늑대’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사회 변화상과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들을 소설적으로 꾸준히 형상화해 온 전성태 작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몽골이란 이국을 배경으로 이런 문제들을 짚어냈다. 사진 제공 창비
사회 변화상과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들을 소설적으로 꾸준히 형상화해 온 전성태 작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몽골이란 이국을 배경으로 이런 문제들을 짚어냈다. 사진 제공 창비
◇ 늑대/전성태 지음/304쪽·9800원·창비

전성태 작가 3번째 신작소설집

군사문화 - 남북갈등 - 편견 풍자

10개 단편에 씁쓸한 카타르시스

안식년을 맞아 몽골에 체류하게 된 교수 창대. 몽골을 시원의 이미지이자 낭만적인 공간으로 생각한 그는 그동안 일에 치여 쓰지 못한 시를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며 써 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외국인을 노린 현지 강도들의 표적이 되거나 열쇠 없이 아파트 문이 잠기는 등 이 나라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악재들이 잇따른다. 결국 창대는 30m 높이에 있는 창을 통해 문이 잠긴 아파트로 들어가려고 시도한다. 그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걱정만 하는 주변 몽골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하듯 호기를 부르며 자신을 “코리안 쏠저”라고 지칭한다. 궁지에 몰렸을 때 드러나는 군사주의 문화의 단면을 희극적으로 엿볼 수 있다.(‘코리안 쏠저’)

현실에 깊게 뿌리내린 작품들을 선보여 온 전성태 작가의 세 번째 신작 소설집은 이처럼 몽골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다. 4년 전 6개월 정도 몽골에서 보낸 작가의 체험이 밑바탕이 됐다. 소설집에 실린 10편의 작품 중 6편이 몽골의 도시와 초원, 교민사회 등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배경을 외국으로 했을 뿐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현안이다. 군사주의 문화의 잔재,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 남북문제 등은 오히려 몽골이라는 제3국을 배경으로 했을 때 선명하게 부각된다.

‘목란식당’은 울란바토르에 있는 북한 식당을 배경으로 했다. 여행가이드인 화자와 그의 삼촌이 이곳을 찾는다. 삼촌은 민간교류 대표로 북한을 방문한 뒤 그린 그림으로 일부 관계자를 난처하게 만들고 붓을 꺾은 화가다. 이때 목란식당에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취업비자 운운하며 식당 종업원들을 협박하거나 트집 잡는 일부 교민, 이 식당에서 번 돈이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지를 따져 묻는 극우 기독교 단체 등이 소동을 일으킨다. 한바탕 난리를 지켜보던 화자가 마지막으로 뱉어낸 “목란은 그냥 식당인데…”라는 말은 이념을 둘러싼 불필요한 대립과 투쟁이 만성화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꼬집는다.

표제작 ‘늑대’는 몽골의 초원까지 세력을 확장하게 된 자본주의와 그로 인해 달라진 초원의 삶을 독특한 구성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한때는 가축을 몰고 초원을 떠도는 목자였으나 이제는 게르(몽골 전통 이동식 집)를 설치하고 바람을 쐬러 초원을 찾는 도시인, 사냥꾼, 관광객들을 손님으로 받으며 돈을 버는 촌장, 몽골로 이민 온 뒤 서커스 산업으로 돈을 벌고 이제는 늑대를 쫓는 사냥꾼이 된 한국인 등 등장인물들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사람과 가축이 공존하던 유목 공간이 맞닥뜨리게 된 변화를 소설은 이렇게 설명한다.

“한 잔의 수태채가(몽골 전통차), 게르에서 하룻밤 잠이 돈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노동이, 늑대를 쫓는 동행이 벌이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게르 천창으로 빛나는 별과 스미는 달빛이, 지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이 역시 돈의 현영처럼 손님들을 끌어왔습니다.”

한국인 사냥꾼은 암컷 늑대를 죽여 수컷 늑대를 사로잡으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뜻밖의 반전으로 그의 계획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 파국은 초원이나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인간의 오만함, 자본주의적 욕망의 야만성을 되짚어보게 한다.

‘이미테이션’은 혼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희극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주인공 ‘게리’는 농사짓는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 가정에서 태어난 토종 한국인임에도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혼혈아로 오인 받는다. 어린 시절 내내 놀림에 시달리며 정체성 혼란에 시달린 그는 차라리 자신을 혼혈아라고 속이는 게 이 사회에서 좀 더 편리하게 사는 방법임을 깨닫는다. 그가 사회적 편견을 역이용해 외국인 강사로 위장해 영어를 가르친다는 웃지 못할 상황은 다양성을 용인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편협함에 대해 뼈아픈 성찰을 해보게끔 한다. 탈북자들의 상황과 심경을 생생하게 그려낸 ‘강을 건너는 사람들’, 1980년대 초 군사독재 시절 아이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 등도 실려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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