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35>不在其位하여서는 不謀其政이라

  • 입력 2009년 4월 6일 02시 53분


조정에서의 지위가 없는 사람이 국가 정책을 논하는 것을 橫議(횡의)라고 한다. ‘논어’ 泰伯(태백)의 이 章은 橫議를 올바르지 못한 정치행위로 규정했다. 국민 모두가 직간접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현대 상황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越權(월권)을 방지하고 조직체계의 합리성을 추구해야 하는 현실적 관점에서 보면 이 章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不在其位의 不은 언해본을 따라 ‘불’로 읽는다. 이 구는 不謀其政의 조건을 나타낸다. 한문에서는 접속사 없이도 문맥만으로 조건-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 在는 ∼에 있다는 말이다. 謀는 그것에 관해 논해 그것을 위해 도모한다는 뜻이다. 其政은 앞서 其位에 있는 사람이 맡아 해야 하는 政事(정사)나 政務(정무)를 가리킨다. 넓게 職務(직무)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이 장은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직무에 대해 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각자 자기 일에 專一(전일)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중용’에 나오는 素位(소위)의 뜻과 통한다. ‘중용’에 보면 ‘군자는 현재 처한 위치에 알맞게 행동할 뿐이요,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고 했다. ‘중용’의 구절은 군자가 현재 위치에 편안한 마음으로 처하여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자세를 말한 것이다. 하지만 직무에 한정해서 본다면 ‘논어’의 이 장과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보면 “요리하는 사람이 주방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시동이나 축관이 제기를 넘어 와서 그 일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제기를 넘어가는 것을 월준(越樽)이라고 한다. 월준을 옳지 않다고 비난하기보다 각자가 素位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루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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