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눈-귀의 황홀경…한미합작 뮤지컬 ‘드림걸즈’

  • 입력 2009년 3월 12일 02시 59분


한미 합작 뮤지컬 ‘드림걸즈’는 ‘빛의 마술’을 펼치는 이동식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의 기술적 성취에 비해 미국 흑인 음악가들의 애환을 감동적으로 담아내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사진 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한미 합작 뮤지컬 ‘드림걸즈’는 ‘빛의 마술’을 펼치는 이동식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의 기술적 성취에 비해 미국 흑인 음악가들의 애환을 감동적으로 담아내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사진 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흑인 가수가 부른 ‘스테핑 투 더 배드 사이드’의 차트 조작을 위해 백인 라디오 DJ들에게 뇌물을 살포하는 내용을 그린 ‘드림걸즈’의 군무. 사진 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흑인 가수가 부른 ‘스테핑 투 더 배드 사이드’의 차트 조작을 위해 백인 라디오 DJ들에게 뇌물을 살포하는 내용을 그린 ‘드림걸즈’의 군무. 사진 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드림걸즈’는 백열등처럼 환하게 빛난다. 360도 회전하는 이동식 발광다이오드(LED) 대형 패널(가로 2m, 세로 5m) 5개가 만들어내는 ‘빛의 마술’ 때문이다.

이 LED 패널이 쏘아내는 빛의 영상이 대부분의 무대세트를 대신한다.

배우들의 영상을 확대 투사함으로써 그림자 아닌 그림자, 빛의 그림자를 창조해내기도 한다.

또한 5개의 패널이 열리고 닫히면서 흑인음악 쇼 비즈니스 세계를 다룬 이 작품에 번번이 등장하는 스테이지와 백 스테이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분할의 마술도 펼친다.》

○ 화려한 LED조명-무대의상-가창력 압권

다이애나 로스가 리드싱어로 활약한 흑인 여성 보컬 그룹 ‘슈프림스’를 모델로 삼은 뮤지컬 속 ‘드림메츠’ ‘드림즈’의 여가수들이 입고 나오는 수십 벌의 화려한 무대의상도 이 작품을 빛나게 하는 요소다. 고난도의 리듬앤드블루스(R&B) 음악에 도전한 가수들의 뜨거운 가창력도 한몫한다.

그러나 그 빛은 차갑게만 느껴진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어쩌면 그것은 세계적 보편성을 너무 강조하면서 이 작품의 공기와 같은 역사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1981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첫선을 보이고 2006년 영화로 제작된 이 작품의 감동은 흑인 음악가들의 절절한 애환에서 나온다. 미국 흑인음악이 백인들의 억압에 맞서 주류음악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설움과 갈등, 배신과 화해라는 극적 내용이 실화를 토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아름다운 외모로 스타가 되는 디나(정선아)는 다이애나 로스의 분신이고 뛰어난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밀려나는 에피(홍지민·차지연)는 슈프림스의 원조 리드싱어였던 플로렌스 발라드가 모델이다. 또한 비정한 쇼 비즈니스맨 커티스(오만석·김승우)는 모타운 레코드의 창업자 베리 고디 주니어가 모델이다.

○ 백인억압 맞선 흑인이야기 생략해 감동 미흡

그런데 새로 무대에 올려진 드림걸즈는 정작 이들 흑인음악가의 애환을 세계 어떤 공연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접근한다. 음악에서는 흑인의 영혼을 담은 솔(soul)이 백인음악과 타협하면서 감미로운 이지 리스닝 음악이나 댄스곡인 디스코로 변해가는 역사가 흐르는데 정작 이야기 속 흑백 갈등은 스치듯 지나간다.

아마도 미국 관객에겐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여서 생략이 가능하고, 한국 관객에겐 낯선 이야기라 일일이 설명하기엔 벅차다는 판단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정확히 신시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가 걸어간 길과는 반대로 접근하면서 초래된 결함이다. 댄싱 섀도우는 6·25전쟁을 무대로 한 한국 리얼리즘 연극 ‘산불’에 세계가 공유할 보편성을 부여하기 위해 한국적 현실을 버리고, 태양 군과 달 군이 전쟁을 펼치는 우화적 공간으로 비약하는 바람에 이야기의 박진감을 상실했다. 댄싱 섀도우와 더불어 드림걸즈 제작진도 보편성을 획득하려 구체적 역사성을 희석시키는 각색과 연출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 차지연-최민철 스타탄생 가능성 엿보여

그럼에도 드림걸즈는 가슴 뜨거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두 명의 배우 덕분이다. 에피 역의 차지연 씨와 바람둥이 흑인가수 지미 역의 최민철 씨는 LED 화면이란 기술적 성취에 가려진 흑인의 애환을 온몸으로 잘 소화해냈다.

홍지민 씨의 그늘에 가려 있던 차 씨는 영화에서 에피 역으로 신데렐라가 된 제니퍼 허드슨만큼 놀라운 발견이다. 홍 씨가 막강한 가창력으로 R&B와 한판 승부를 펼친다면 차 씨는 R&B를 ‘데리고 논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세상에 온통 가시를 세우고 살던 에피가 가수로서 생명이 끝나려 할 때 절창하는 ‘I'm Changing’이 백미다.

영화에서 에디 머피가 연기한 지미 역의 최 씨도 흑인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와 노래로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다. 반면 커티스 역의 오만석 씨는 명성에 부응하는 카리스마를 못 보여줬고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김승우 씨의 춤과 노래는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7월 26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샤롯데극장. 4만∼13만 원. 1544-155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