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큰어른’ 김수환 추기경 ‘큰 빛’ 남기고 떠나다

  • 입력 2009년 2월 17일 02시 55분


어제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사회의 큰어른이자, 통합의 상징이었다. 그는 1969년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된 후 역사의 고비마다 위정자와 국민이 지표로 삼아야 할 바른 말을 했다.

김 추기경은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는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과 제도에 대해 과감히 발언함으로써 사회의 등불이 됐다. 1987년 1월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군 추모 강론을 통해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권력의 야만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6월 민주항쟁 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피신해 들어왔을 때도 “나와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며 경찰의 성당 진입을 막아 민주화 운동의 성공에 힘을 보태주었다.

김 추기경은 권력을 잡은 민주화 세력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정부의 좌편향 인사들은 역사의식에 투철한 원로의 고언을 수용하지 않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추기경의 역할이 과대평가됐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대결과 분열이 심해지는 현상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어른의 권위마저도 송두리째 부인하는 독선(獨善)의 과잉 때문이다.

김 추기경의 가계(家系)에는 한국 천주교의 수난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할아버지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순교했고 아버지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옹기장수를 하며 떠돌다 추기경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는 한국 천주교의 부흥을 이뤄낸 걸출한 종교 지도자였다. 김 추기경 재임기간인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한 103위를 시성(諡聖)해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신앙을 세계에 알렸다.

김 추기경은 양떼를 사랑한 목자이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벗이었다. 그는 폭정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을 잊지 않았으며 병자 빈민 탈북자 사형수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성매매여성들을 위해 기도했다.

김 추기경은 종교 간 화해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그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개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법정 스님을 명동성당으로 불러 설법을 하도록 했다. 오늘날 자신의 교리(敎理)만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고 타종교를 배척하는 편협한 종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다.

그는 안구를 기증해 두 사람에게 빛을 선물했으며, 그가 남긴 ‘큰 빛’은 우리의 앞길을 인도할 것이다. 한국 천주교의 큰 별이자, 우리 사회의 정신세계를 이끌던 어른을 잃었다.


▲동아닷컴 임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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