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풍속 이야기 20선]<9>한국의 신화

  • 입력 2009년 2월 3일 02시 59분


◇한국의 신화/나경수 지음/한얼미디어

《“신화는 신의 집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금방 폐가가 되듯이, 신이 죽은 곳에 그의 정주처인 신화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신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여기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신화는 사실이 아니라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의 신화를 통해 민족의식의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상징을 읽어내야 한다.”》

건국신화로 본 ‘문화적 DNA’

개천절은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저자는 이처럼 믿기 어려운 신화를 근거로 국경일을 정하고 휴일로 삼은 것은 사회적 낭비일 수 있지만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신화의 상징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화는 역사, 학문, 종교, 예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적 산물이다. 신화를 들여다보면 거기에 새겨진 우리 민족의 문화적 DNA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문헌에 기록된 여러 건국신화부터 남매가 남녀로 결합해 인류의 시조가 된다는 남매혼 신화 같은 구비설화까지 넘나들며 한국인의 세계관과 상상력을 탐색한다.

한국의 신화 중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 건국신화류. 단군 신화를 비롯해 주몽 신화, 혁거세 신화, 수로 신화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마한(馬韓)을 개국한 무강왕 신화, 제주의 삼성혈 신화들이 모두 건국신화에 속한다.

그러나 신화시대를 지나 역사시대에 접어들어서도 건국신화가 ‘생산’되기도 했다. 고려건국과 관련해 ‘고려사’에 실린 ‘고려세계(高麗世系)’,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 설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용비어천가’가 그 사례.

저자는 건국신화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다양한 타계관(他界觀·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는 눈)을 살펴봤다.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은 천상, 지하, 수중, 해양 등에서 탄생했다. 천상타계의 경우 강림과 승천, 지하와 수중타계의 경우 매장과 용출, 해양타계는 물결에 떠돌다 뭍에 닿거나(표착·漂着) 바다 또는 강을 건너는 형태로 나타났다.

한국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땅 속으로 간다고 믿기도 하고 하늘로 오른다고도 했으며, 바다를 건너 멀리 간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탄생과 죽음은 이질적인 두 공간 사이의 왕복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어서도 죽지 않는다는 역설을 신앙체계로서 실현하여 영원한 삶을 향유했던 것이다.”

저자는 고전시가 ‘처용가’의 배경인 처용랑 설화를 들여다봤다. 처용랑이 헌강왕을 따라 경주에 와서 왕을 보필했다. 왕이 처용에게 아름다운 아내를 줬는데 역신이 욕심을 내 동침을 했고, 처용이 잠자리에 있는 두 사람을 보고 가무를 하며 물러난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처용가’다.

처용의 가정은 국가, 미인 아내는 아름다운 신라에 대한 비유다. 역신에게 능욕을 당한 상황은 신라가 적군에 의해 유린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거리에서 ‘처용가’가 불렸다면 신라가 망하리라는 뜻을 담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처용가’가 참요(讖謠·미래의 어떤 징후를 암시하는 노래) 기능을 한 것은 처용랑 설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진시황의 중국 통일이 우리 신화에 미친 영향, 신화적 성소의 의미를 간직한 전남 화순군 운주사 천불천탑, 구비전승물인 송징전설(완도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을 수호하는 송징 장관에 얽힌 설화)과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웅 서사시 ‘송대장군가’ 비교를 통한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의 관계, 한국인의 미의식이 반영된 수로부인 이야기 등을 담았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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