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한반도 외국공관은 스파이 기지”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구한말 한국에 파견된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영국 벨기에 공사가 1903년 미국공사관(현 서울 중구 정동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구한말 한국에 파견된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영국 벨기에 공사가 1903년 미국공사관(현 서울 중구 정동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日-러-美 등 침략-수탈 위한 정보 수집 주력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서 펴내

개항기 한반도에 설치된 일본 영사관의 직원들은 전국을 다니면서 민정을 파악하고 지역의 인구와 면적, 경제상황 등을 면밀히 조사했다. 이렇게 파악된 정보들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기초 자료로 활용됐다.

루시어스 푸트 초대 주한 미국공사를 비롯해 초기 미국의 외교관들은 조선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각종 사업권을 따내는 데 주력했다. 재한 러시아 공사관은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려고 했던 본국의 야심에 따라 동해안과 함경도 지방을 탐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처럼 19세기 말∼20세기 초 개항기 외국공관들은 한반도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본국의 이익 실현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개항기 외국공관을 ‘한반도 침략과 수탈의 전초기지’로 분석한 ‘개항기의 재한 외국공관 연구’를 최근 펴냈다.

하원호 동국대 연구교수는 “개항기 각국의 공관은 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넘어 우리 사회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항기 재조선 일본공관 연구’에서 “서울 부산 원산 등 7개 일본 영사관에 파견된 일본인들은 곡창지대의 작황, 지역별 특산물, 도량형, 각지의 인구, 지형과 지세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한반도를 조사했다”면서 “영사관의 보고는 조선 침략을 위한 지침서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손정숙 이화여대 강사가 쓴 ‘한국 주재 미국공사관의 외교전략’에 따르면 미국의 외교관들은 한반도의 정치적 문제에 대한 개입은 피하면서 왕실과 돈독한 관계를 통해 경제 이권을 챙기는 데 주력했다. 푸트 공사는 미국의 회사들 대신 왕실과 직접 교섭을 벌여 왕실 물품 구입 대행권, 증기선 운항권, 궁중 전기 가설 독점권 등을 따냈고 후임인 호러스 앨런 공사도 왕실을 통해 금광 철도 전차 전기 전화 사업권을 가져갔다.

손 강사는 “기존의 많은 연구는 주한 미국공사들을 조선의 독립 보전을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하지만 이들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친한적’ 제스처를 취한 것일 뿐이며 이들에게 조선의 독립 보전은 1차 과제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나혜심 성균관대 강사는 ‘개항기 한국의 독일공관 연구’에서 “독일은 과잉 생산과 인구 증가, 원료 부족 등 산업자본주의 후기에 들어 처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아시아로 진출했다”면서 “독일은 조선의 운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독일 영사들은 조선 왕실에 중립국 선언을 부추기고,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같은 사안은 비스마르크 총리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한반도의 정세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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