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삶 어우러진 집]<10·끝>김택수씨 설계 곤지암 2층집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3시 06분


오래된 축음기 닮은 모습

잔잔한 음악 흐르는 듯

고즈넉한 숲 속 야외음악당 무대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구식 오디오.

김택수(37) 베르텍스디자인 소장이 경기 광주시 실촌읍 곤지암리에 설계한 주택은 첫인상에서 음악애호가인 건축주의 취향을 드러낸다.

서남쪽을 바라보는 2층 안방의 테라스 유리창 프레임이 이 집의 얼굴. 너비 6m 높이 5.2m의 널찍한 프레임 뒤로 스테인리스 스틸 평지붕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동북쪽 끝의 부엌 천장을 부드러운 곡면으로 감싸 덮는다. 오래된 축음기의 나팔 모양 메가폰과 닮았다.

“축음기를 닮았다고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웃음) 디자인 콘셉트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장식을 절제한 독일산 오디오의 중후한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조형 요소들이 시각적인 리듬을 갖도록 신경을 썼죠.”(김 소장)

1층 외장 마감재는 노출콘크리트. 2층에 쓴 스테인리스 스틸은 표면을 약품 처리해 어두운 빛깔로 부식시켰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삼성 리움미술관에 사용한 재료로 집의 외관에 묵직한 분위기를 더했다.

바로크 시대 실내악을 좋아하는 건축주 황선기(51) 씨는 “어느 곳이든 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품위 있는 갤러리 같은 집”을 원했다. 김 소장은 내부 공간을 분할하는 칸막이벽을 가급적 덜어내면서 생활에 필요한 기능성도 확보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해법의 핵심은 욕실과 화장실.

이 집은 남쪽의 길쭉한 연못과 나란히 놓인 1층 직육면체 위에 비슷한 크기의 2층 육면체를 비스듬히 걸쳐 얹은 모양을 하고 있다. 집 안에 들어서면 거실 한가운데 2층을 떠받치는 큼직한 목재마감 내력 기둥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 기둥 속에 욕실과 화장실이 있다.

“집 한복판에 욕실을 두겠다는 제안이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내부 공간 전체를 하나로 엮는 데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중앙으로 모은다’는 아이디어에 동의했죠. 안방에서 쓰는 화장실과 욕실은 2층에 있으니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할 염려도 없었고요.”(황 씨)

기둥을 중심으로 도넛처럼 연결된 1층 내부 서쪽 공간은 음악 감상을 위한 거실이다. 거실 쪽 기둥 벽면에는 미니바를 만들었다. 기둥 뒤 동쪽 공간에 있는 부엌과 식당 위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채광 천창(天窓)을 냈다.

내부 마감재는 핀란드산 자작나무 합판. 9cm 너비로 길쭉하게 켜서 3mm씩 틈을 주며 붙였다. 소리를 반사하지 않고 흡수하는 벽면과 천장은 음원(音源)에서 멀리 떨어진 식탁에 앉아서도 좋은 음질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천장 모서리를 각지게 마감하지 않고 부드럽게 둥글린 것도 음향을 배려한 디테일이다. 건축면적은 175m². 2007년 1월 설계를 시작해 8월 착공하고 2008년 3월 완공했다.

김 소장은 한국에서 연극연출을 공부하고 충무로에서 영화연출부로 일하다가 호주로 건너가 건축 공부를 시작했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느꼈던 담벼락 사이 소통의 느낌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스토리텔링 디자인이 독특하다.

“건축은 분할과 소통을 연출하는 작업이죠. 거실과 부엌, 방에서 각각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가족 구성원의 기척을 은근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 앞 연못 위로 드리운 가느다란 스틸 대롱을 따라 지붕 위에 모인 빗물이 조르르 흘러내린다. 물거품을 따라 모인 연못 속 물고기도 건축의 재료. 2층 테라스 커다란 프레임은 김 소장이 건축한 삶의 무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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