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이제 내 맘속에 화석이 되었다”

  • 입력 2008년 11월 18일 03시 01분


‘김창완 밴드’로 11년 만에 새 앨범 ‘더 해피스트’를 낸 가수 김창완. 그는 “음악 본연의 긴장감과 전광석화처럼 일어나는 악기와 악기의 조화나 충돌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창완 밴드’로 11년 만에 새 앨범 ‘더 해피스트’를 낸 가수 김창완. 그는 “음악 본연의 긴장감과 전광석화처럼 일어나는 악기와 악기의 조화나 충돌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창완, 창훈, 창익 삼형제로 이뤄진 밴드 ‘산울림’이 ‘아니 벌써’가 수록된 데뷔 앨범을 낸 건 1977년. 이후 파격과 순수를 상징하며 한국 록의 역사를 써 내려간 이들은 1997년 13집 ‘무지개’를 끝으로 더는 새 앨범을 내지 않았다. 그로부터 11년 만인 2008년. 이제는 록그룹의 리더보다 배우로 더 익숙한 김창완(54)이 다시 앨범을 들고 나왔다.》

‘김창완밴드’ 이름걸고 미니앨범 낸 김창완

‘산울림’이 아닌 ‘김창완 밴드’라는 이름을 걸고. 오랜 음악적 동료인 젊은 후배 4명과 함께 낸 미니앨범 ‘더 해피스트’에는 연주곡 ‘걸 워킹’을 비롯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장소리를 표현한 ‘우두두다다’ ‘모자와 스파게티’ 등 6곡이 실렸다. 12월 27일부터 3일 동안 서울 홍익대 근처 롤링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도 열 계획. 15일 그와의 인터뷰는 홍익대 부근 녹음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뤄졌다.

―11년간 앨범을 내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앨범을 낼 기회가 없었다기보다 결심이 필요했던 거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인사치레로 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제게 별 의미가 없었어요. 곡을 많이 써놨음에도 발표하기를 주저한 건 내가 앨범 작업을 한다고 하면 대형 기획사에서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서였거든요. 하지만 산울림에 대해 세월이 준 훈장은 훈장이고 시장은 냉엄합디다.”

―그럼 이번엔 결심을 하신 건가요.

“가요계에 출사표를 낸 셈이죠.”

―(올해 1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막내 동생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이 앨범은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동생들은 앨범보다는 산울림의 재건에 힘쓰고 싶어 했어요. 수많은 레퍼토리에 현대적인 옷을 입혀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요. 동생들과는 공연을 통해 대중적인 밴드로 거듭나자고 마음먹었는데 사고가 터진 거죠. 이제 산울림이라는 밴드는 본의 아니게 정리해야 되지 않겠어요?”

―산울림과 김창완 밴드의 음악은 어떻게 다를까요.

“보컬이 같은데 거기서 얼마나 달라지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반면 ‘앗, 사뭇 다르네’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일단 밴드 평균 연령이 더 젊어졌다는 게 다르고요.(웃음) 제가 생각하기에 산울림이 갖고 있던 독창성 서정성 진취성 중에서 진취적인 면을 부각시켰어요. 그러나 이 앨범 한 장에 김창완 밴드의 모든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앨범은 시작일 뿐, 라이브 무대로 더 많은 걸 보여 줄 거예요.”

―항상 “내 음악은 20대”라고 말해 왔는데요, 이번 앨범은 특별히 어떤 세대가 들었으면 하는 게 있나요.

“제가 앨범을 냈다고 하면 ‘오랜만에 늙은이가 일냈구나’라고 할 거예요. 사실이지만 제겐 그런 말이 꼭 조사(弔辭) 같아요. 왜 사람들은 가수가 그 나이대의 노래를 부르길 원할까요. 이번 앨범은 그런 편견을 뒤집는 문화적 모험이에요. 젊은 사람들도 제 노래가 어른 냄새가 난다거나 구태의연하지 않다는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음악적으로는 어떤 모험과 시도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생소한 펑크록이에요. 산울림이 등장하던 1970년대는 사전심의로 거세된 노래가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펑크라는 장르예요. 모던록에도 자양분이 됐고 가요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는 장르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외면 받은 장르죠. 지금이라도 그런 공백을 메우고 싶어요.”

산울림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희소식이 하나 더 있다. 25일 이번 앨범과 함께 산울림 전집 ‘더 스토리 오브 산울림’도 발매된다. LP 표지를 그대로 복원한 17장의 CD엔 정규앨범 수록곡 외에 미공개 데모곡, 연주곡, 미수록곡 224곡 등 산울림의 자취가 빼곡히 담겨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복원 작업이 그가 아닌 오랜 팬들의 손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번 작업으로 막내를 보낸 자신에게도 큰 위로가 됐다”는 그는 전집의 서문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이제 바람은 멈추었다. (중략) ‘산울림’, 그들의 노래는 화석이 되었다. 화석은 생명의 흔적인 동시에 다시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자각의 덩어리다. 이 전집은 그런 자각에서 비롯됐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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