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MS. 박의 라이브갤러리]여성미술가의 씁쓸한 ‘여성’ 꼬리표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8시 12분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피카소, 백남준.

이들 모두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미술계의 거장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남성 미술가라는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 누군가에게 위대한 미술작품은 남자가 창조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20세기 중반까지 그 말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의 유명한 미술잡지 ‘아트 포럼’(Art Forum)이나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에 실린 글 중 약 90퍼센트가 남성 작가의 작품을 다룬 것이라고 하니 미술계에서 ‘여성 미술가’라는 존재는 매우 특별했던 모양이다.

주디스 레이스터,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수잔 발라동, 메리 카사트. 이들 모두 낯설기 짝이 없는 이름들이다. 이 모두 근래에 와서야 조명을 받고 있는 여성 미술가의 이름들이다. 이렇게 여성 미술가의 이름이 낯설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오래된 시선과 관련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성 미술가는 오래전부터 남성 미술가와 ‘함께’ 존재해 왔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녀들이 활동했던 해당 시대의 문화와 제도의 특수성으로 인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했거나, 또는 과거 여성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오늘날의 시선이 그것을 배제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양미술사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필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인 남성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여성 미술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도 많은 남성 미술사가들이 자수나 퀼트 같은 여성들의 제작물을 집안에서 하는 수공예 정도로 공공연히 취급했다. 이와 같이 어떤 제작품을 두고 그것이 예술 작품이냐, 아니냐는 판단은 시대의 특정한 관점에 따라, 그리고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른 매우 조건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이다. 최근 여성 미술가의 위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성 미술가에서 ‘여성’이라는 두 글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를 ‘남성 미술가’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위대한 거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불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 미술가를 사회적 편견의 일방적 희생양으로 취급하는 것은 금물이다.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역시 생존 당시에는 예술가를 사회적 편견과 싸운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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