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3년 교황청, 한국 순교자 103인 시성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0분


1839년과 1846년, 1866년 서울 용산구 새남터를 포함한 전국 처형장에서는 대규모 참수형이 벌어졌다.

처형당한 사람들은 천주교 신자들이었고 이 세 해는 한국 천주교사에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로 기록되고 있다.

세 차례 박해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는 8000여 명에 이르렀고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랑스 신부 모방 등은 참수형에 처해진 뒤 머리가 군문(軍門)에 내걸렸다.

순교자의 시신이 땅에 묻혀진 지 강산이 11번이나 바뀐 1983년 로마 교황청은 순교자들에 대한 중대한 발표를 했다.

9월 27일 로마 교황청은 추기경 33명과 대주교 및 주교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추기경 회의를 열고 세 차례 박해 때 한국에서 순교한 103명에 대한 시성(諡聖·성인의 품위를 주는 것)을 승인했다.

1971년 12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한국 순교자 복자시성안이 접수된 지 12년 만에 이뤄진 결실이었다.

시성이 승인된 103명에는 한국 첫 신부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모방 등 프랑스 신부 10명도 포함됐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적을 행한 사실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때 시성이 승인된 103명은 3개월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적 심사를 면제했다.

그러나 예수가 태어나 활동한 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척박한 지역 중 한 곳에서 신앙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1만 명에 가까운 신자가 목숨까지 내어 놓은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103명에 대한 시성식은 이듬해인 1984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방한해 직접 집전한 당시 시성식은 로마의 베드로 성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열린 첫 시성식이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경의 표시도 하지 않고 이 거룩한 땅을 어떻게 밟을 수 있겠느냐”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김포공항 땅 위에 입맞춤을 했다.

한국 가톨릭은 현재 한국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 등 169명에 대한 시성을 추진하고 있어 한국 성인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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