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소설은 세상을 향한 질문…독자가 스스로 답 찾아야”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0분


◇ 위험한 독서/김경욱 지음/296쪽·1만 원·문학동네

김경욱이 돌아왔다.

지난해 6월 장편 ‘천년의 왕국’(문학과지성사) 이후 1년 만. 1993년 등단해 장편, 소설집 모두 아홉 권의 책. 평균 2년에 한 권꼴로 책을 펴낸 그에게 귀환 같은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영채 문학평론가가 ‘소설기계’란 별명을 붙인 것처럼 그는 꾸준하게, 그리고 차곡차곡 길을 걸어왔으니.

23일 오후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나 ‘소설기계’이라는 호칭에 대한 소감부터 묻자 그는 갸우뚱거렸다. “기계, 머신…, 좀 야한 뉘앙스긴 한데. 좋은 뜻인 거죠?” 무표정하게 농도 치는 묘한 기계, 슬쩍 질문이란 코인을 넣어봤다.

―책에 실린 8편 모두 현실인 듯 상상인 듯 경계가 모호하다.

“소설의 상상력을 중요시해서일까. 상상이란 용광로 속에서 무엇이 현실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소설은 현실이란 사진을 찍는 게 아니다. 실재를 바라보지만 자신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붓을 움직이는 그림과 같다. 삶 자체를 재료 삼아 쓰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상상력만으로 글을 짓는 이도 있다. 난 후자에 해당한다.”

―독서치료사, 햄버거 가게 직원 등 등장인물의 직업이 다양하다. 골방 소설가도 있고….

“집에서 글만 쓰는 모습은 나와 비슷하다. 오죽하면 아내가 ‘암굴왕’이라 부른다. 다양한 직업을 그리지만 취재는 따로 안 한다, 전혀. 그 등장인물이 소설 전체에서 얼마나 유기성을 갖고 전개되느냐가 중요하다. ‘위험한 독서’의 독서치료사도 오히려 글 전개에 방해가 될까봐 만나보지 않았다.”

―‘위험한 독서’에 ‘당신은 나에게 어떤 책이었을까’란 대목이 나온다. 작가의 말에는 ‘이번에는 당신이 읽을 차례야, 나를 읽어봐’라고 썼더라.

“요즘 품고 있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책으로 보인다. 그걸 읽어나가는 게 인생 아닐까. 하나하나 서로 다른 ‘사람’이란 책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이렇게 보면 세상을 대상화할 거리가 생겨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희망에 들뜨지도, 절망에 굴하지도 않고. 회피는 아니다. 독서란 행위는 책에 밑줄도 긋고 의견도 말할 수 있는 거니깐.”

―전작의 ‘커트 코베인’이나 ‘장국영’ 같은 문화적 코드는 많이 사라졌다.

“대신 ‘천년여왕’(3번째 단편)이 나오지 않나, 하하. 문화적 코드가 많이 내면화된 것 같다. 자연스러워졌다고나 할까. 소설은 세상을 향한 하나의 질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답이란 없는 거 아닌가. 자기 자신을 비춰보면서 독자 각자 답을 찾는 게 맞는 것 같다.”

―단편 모두 꽤 유머러스하고 생기발랄한데 전체적으론 묘한 쓸쓸함이 있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중시하는 편이다. 쓰이지 않은 부분에 남겨진 그림자처럼. 집을 짓는 벽돌과 벽돌 사이에도 보이진 않지만 많은 것이 숨어있지 않나. 일상을 쳇바퀴 돌 듯 살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린다. 책은 그런 영혼을 비춰주는 거울이 돼야 한다.”

―작가도 인생이 쓸쓸한가.

“당연한 말을. 그래도 글 쓸 땐 행복해진다. 당신은 어떤가. 행복한 일을 하며 사는가.”

―기계한테 질문은 안 받겠다.

“하하, 책을 읽은 이상 이미 질문은 던져진 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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