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마을 사람들 넋 뺏어간 수정금자탑이란 ‘괴물’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0분


◇ 객소리 가득 찬 가슴/류전원 지음·박명애 옮김/611쪽·1만4000원·문학과지성사

이 소설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정신없는 부조리극 혹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우화 같다. ‘오십 번지 서쪽’이란 구역을 배경으로 설정한 작가는 총 1막에서 10막에 걸쳐 수정금자탑이란 건물이 세워진 뒤 이 마을에 나타난 이상한 변화들에 대해 상식적 세계를 초월하는 장황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핸드폰’ ‘닭털 같은 나날’ 등 그동안 자본주의 시장 개방 후 중국이 겪는 세태를 사실적으로 짚어내는 작품을 주로 써 온 작가는 이번에 정보화시대가 만들어낸 어두운 이면을 실험적 형식으로 폭로했다.

이야기는 백정 출신으로 수정금자탑 관리자가 된 라오서가 신발 수선공 라오마에게 이것이 세워진 뒤 오십 번지 서쪽 사람들이 정신이 나가고 멍청해진 이유를 알아보라고 지시하는 데서 시작한다. 라오서는 은막, 몽환극장 등이 있는 수정금자탑에서 영상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이곳에서 주민들의 정신 나간 모습이 방영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라오마는 지식으로 돈을 벌고 출세한 라오지앙, 목욕탕 주인 라오펑, 가라오케 접대부 샤오스, 넝마주이 라오후 등을 만난다. 이들은 마을 주민들이 멍청해진 이유에 대해 저마다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이 이야기들은 자동기술에 가까운 것으로 논리적 일관성을 파악하기 힘들다. 쏟아지는 말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문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이 제멋대로 변해 몇 세기가 금방 지나가는가 하면 사람이 곰팡이가 슨 케이크로 변한다. 또한 변화무쌍하게 달라지고 사라졌던 존재들이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소설의 결말에서 등장인물들은 이윽고 썩어 문드러진 목재, 폐품, 쓰레기, 멍청한 원숭이, 닭, 파리, 숯검정으로 변하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수정금자탑은 기이하게 변형되며 소금기 없는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을 멍청하고 인정 없게 만들었다가 점차 도구화해 가는 주범이 결국은 정보화시대 하드웨어를 대변하는 수정금자탑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정형화된 소설의 형식을 탈피해 우스꽝스럽고 황당하게 전개되는 이 소설은 기술과 기계에 속박당하고 종속돼 가는 현대인의 세태에 대해 우울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