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the Air]KBS자연다큐 ‘인간과 습지’ 촬영 현장

  • 입력 2008년 9월 2일 02시 57분


KBS 자연 다큐멘터리 ‘인간과 습지’를 제작 중인 김서호 PD(왼쪽)와 홍성준 촬영감독이 인천 강화도 갯벌에서 갯지렁이 촬영을 위해 깊게 파인 갯골 한가운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강화=조종엽 기자
KBS 자연 다큐멘터리 ‘인간과 습지’를 제작 중인 김서호 PD(왼쪽)와 홍성준 촬영감독이 인천 강화도 갯벌에서 갯지렁이 촬영을 위해 깊게 파인 갯골 한가운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강화=조종엽 기자
장화 신은 발 푹푹… 30㎏ 카메라 낑낑…

갯벌 속 제작진 “갯지렁이야, 나와다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인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앞 갯벌. 바다 쪽에서 소금기를 머금은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영상이 선명하겠는걸.”

10월 중 방영될 KBS 자연 다큐멘터리 ‘인간과 습지’를 촬영 중인 김서호(46) PD는 쾌청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 PD와 홍성준(38) 촬영감독, 오디오맨 이진성(25) 씨가 바지를 걷어붙였다. 홍 감독은 허벅지까지 오는 장화를, 김 PD와 이 씨는 개흙이 잘 붙지 않도록 여성용 스타킹을 신는다. 3월에 촬영을 시작했으니 다섯 달이 지났다. 일주일에 닷새 촬영하는데 한 컷도 못 찍는 날도 많다.

홍 감독은 1140배까지 ‘줌인’할 수 있는 망원렌즈를 챙겨 왔다. 갯지렁이가 흙을 먹는 모습을 확대 촬영하는 것이 이날의 목표다.

고화질(HD)카메라와 망원렌즈, 삼각대를 합치면 30kg 가까이 된다. 이들 장비를 담은 고무통과 카메라를 세우기 위한 받침판, 제작진이 앉을 직사각형의 스티로폼에 구멍을 뚫어 줄을 맸다. 제작진은 이 줄로 장비를 끌고 바다를 향해 500여 m 나아간다. 제작진은 30여 분 동안 깊이가 2m 넘는 갯골을 오르내리자 엉덩이까지 개흙투성이가 됐다.

제작진은 갯골 아래쪽에 카메라를 놓는다.

“사람들이 발밑으로 작은 생물을 보면 하찮게 느낄 수 있죠. 하지만 갯골 아래에서 위에 있는 갯지렁이를 촬영하면, 갯지렁이가 하늘을 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우주는 이 갯벌이고, 그들도 우리와 동등한 생명체라는 느낌이 들죠.”(김 PD)

갯지렁이는 예민하다. 갯벌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가도 모자를 고쳐 쓰는 작은 동작에도 구멍으로 숨어 버린다. 제작진이 갯지렁이가 경계심을 풀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좁쌀만 한 게가 발등 위로 올라와 개흙을 집어먹는다. 제작진은 움직임도, 말도 없다.

두 시간을 기다려도 갯지렁이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 홍 감독이 미처 보지 못한 갯지렁이를 김 PD가 손으로 가리키지만 ‘클로즈업’ 하는 동안 금세 구멍으로 들어간다.

오후 2시, 뱀처럼 뻗어나간 갯골을 따라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돌아가야 한다.

김 PD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사사삭’ 하고 갯벌 표면이 움직이는 것 같더니 잘 보이지 않던 칠게 등 작은 생물들이 구멍 속으로 일제히 들어간다. 미적거리던 홍 감독도 엉덩이를 뗀다. 김 PD는 “갯지렁이가 썰물 직후에 배고파서 많이 올라왔을 텐데 때를 놓친 것 같다. 다음에 또 기다려야 한다”며 웃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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