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와 함께 한 별난식사]초 켜놓은 시골밥상…“오!no 식당 불은 켜지마세요”

  • 입력 2008년 5월 10일 10시 00분


해는 뉘엿뉘엿 지고, 붉은 색 초를 켠다. 컹컹거리는 개 짖는 소리가 식당 마당에서 들려오고 나무 테이블 위에 앉은 14명의 사람들은 매실, 메추리알, 된장찌개, 각종 나물을 곁들인 곤드레 밥을 먹고 숭늉을 마셨다.

순수 한식이었다.

파주 출판단지 안의 자연식을 하는 식당에서 베르베르는 서울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그가 인공의 빛, 플래시를 좋아하지 않아 식당의 불을 끄고 먹었다. 그는 시력이 약하고, 강한 자극에 예민하다고 밝혔다.

식당 주인이 불을 켜면 ‘아! 안돼요’라며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이 특별한 경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옛날 시골에서 밥을 먹는 기분인데요.” 베르베르의 제안에 도리어 흥미를 느낀 이들은 밥상머리에서 어두컴컴한 얼굴을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눴다. 희미한 호롱불을 켜놓은 토속적이고 예스러운 한국의 방이 떠올랐다.

가끔씩 베르베르에게 문자메시지가 들어왔고, 그 문자를 확인하는 액정의 불빛만 인공의 빛이었다.

베르베르는 육류, 생선 등의 고기는 즐겨 먹지 않았다. 조기에 얽힌 자린고비의 이야기를 듣고도, 바로 자신 앞에 놓인 조기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그가 가장 좋아한 것은 ‘장뇌삼 꽃차’였다. “향이 정말 좋다”며 차를 마신 뒤 꽃을 꼭꼭 씹었다. 초고추장으로 살짝 버무린 나물 등 자연식을 좋아했고, 황태구이를 잠시 손으로 뜯어 입에 넣다가 더 먹지 않았다.

아무래도 매운 것은 입에 안 맞는 모양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김치’라고 말했으나 식탁 위의 김치도 맵다고 많이 먹지는 않았다. 계속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위를 비우기 위한 습관인지 한국 음식이 입에 안 맞은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국 음식이 좋다, 그런데 양이 참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베르베르는 적당히 소식하는 남자였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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