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눈은 세계로 열려 있었다”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 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내일부터 ‘문명포럼’

‘문명이 서로 충돌하고, 지구촌 각지의 문화가 아무런 장벽 없이 유입되는 시대. 우리 사회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문학이 대답해야 할 질문 가운데 하나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의 단초를 ‘문명(文明)’ 그 자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찾기로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맞닥뜨린 문제의 이면에는 지난 시대 여러 문명의 갈등과 융합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배경에 놓여 있고, 이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선행돼야 미래에 대한 창의적 대응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사업단은 22, 23일 서울대 미술관에서 ‘세계의 이미지(Imago Mundi)’를 주제로 제1회 문명포럼을 연다. 고대와 근대의 동서양 주요 문명권의 지도, 방패 그림, 신화, 전승 문헌 등에 나타나는 세계 이미지를 분석해 각 문명권의 세계관을 추적하는 포럼이다.

22일 ‘조선에서 본 세계의 이미지’를 주제로 발표하는 정재훈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은 우선 ‘조선은 강화도조약에 의해 개항될 때까지는 세계무대에서 숨어 있던 폐쇄적 사회’라는 통념에 대한 반박부터 시작한다.

그는 “조선 초기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사진)’를 보면 당시에도 아시아뿐 아니라 아프리카까지 표현함으로써 같은 시기 유럽보다도 세계를 더 잘 알고 있었다”면서 “조선은 세계에 대한 개방과 자존의 엄중한 모색 가운데서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했다”고 주장한다.

또 정 연구원은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 후기에도 △중국으로부터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들여왔고 △이돈중은 ‘동문광고(同文廣考)’에서 대만을 무대로 활약한 네덜란드 세력을 자세히 기록했으며 △김수홍의 ‘천하고금대총편람도(天下古今大總便覽圖)’에서도 서구식 세계지도 이미지에 가깝게 표현하는 등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한다.

강성용 연구원은 인도 아리아인들의 세계관을 살핀다. 강 연구원에 따르면 아리아인들은 정착지를 찾아가는 단계인 ‘요가(Yoga)’를 거친 뒤 적당한 곳이 나타나면 정착해서 ‘크세마(Ksema)’라고 하는 정착생활을 했다. 이들에게서 ‘요가’와 ‘크세마’를 반복하며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사람이 사는 세상’인 반면 그 외부는 ‘세계가 아닌 곳’이었다.

아리아인들이 ‘세계가 아닌 곳’을 세계로 만드는 방법은 전쟁을 통해 새로운 정착지를 구축하는 것. 당시 아리아인들의 ‘세계화’는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

이성원 연구원은 ‘고대 중국의 중원 문명과 그 밖의 세계’를 통해 황허(黃河) 문명에서 나타나는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살핀다.

서양 문명권의 세계 이미지를 소개하는 23일에는 ‘홍수신화를 통해 본 고대 근동의 우주관’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그려진 Imago Mundi’ ‘아이네아스의 방패에 그려진 Imago Mundi’ 등이 발표된다.

김헌 연구원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나타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을 두 가지로 나눠 제시한다. 첫째는 신화적 세계관. 보이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며, 모든 것은 신들이 섭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세계는 하늘로 덮여 있고 바다로 한정돼 있다’는 닫혀 있는 세계관이다. 이런 세계관은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우스가 지니고 다니는 방패에 잘 반영돼 있다. 방패 속의 그림에서 세계는 땅과 하늘, 바다로 구성되며 땅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문명연구사업단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추진하는 ‘인문한국(Humanities Korea)’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설립됐다. 세계 문명에 대한 분석과 통합적인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인문학적 성찰을 사회에 환기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이번 포럼은 그 출발을 알리는 행사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