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힘은 여전히 유효”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11년 만에 전시회 이상남 화백

PKM 트리니티 갤러리 개관전

실팍하고 옹골지다.

원과 타원이 여러 패턴을 만들고 이들이 다시 선으로 연결되면서 생겨난 기계적 상징과 기호. 이들은 밀도가 느껴지는 화면과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묘한 활력과 아우라를 뿜어낸다. 얼핏 미래 시대나 SF영화에 어울릴 듯 보이는 추상화된 평면 안에서 여백과 응집이 엇갈리면서 동양적 사유와 미감도 자아낸다.

1997년 갤러리 현대의 개인전 이후 11년 만에 ‘풍경의 알고리듬’전을 준비 중인 이상남(55)은 회화의 매력을 확장시킨 작가다. 작품 속의 기하학적 구성, 색감과 형태는 작가의 탄탄한 내공을 드러낸다. 덕분에 1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개관하는 PKM 트리니티 갤러리의 첫 전시로 선보일 작품을 고르느라 그는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1981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활동하면서 독창적 작품으로 현지의 주목을 받아온 이상남. 그에겐 ‘27년간 뉴욕에서 생존한 작가의 제2의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회다.

“자면서도 전시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하하…. 아무리 새 미디어들이 쏟아져도 결코 질리지 않는 회화의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결실을 내보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20여 년간 회화의 역할과 본분만을 연구해 온 작가가 발표하는 미래형의 해답’(미술평론가 정신영)이란 평을 듣는다.

신작들의 경우 더욱 다채로워진 기호가 화면의 율동과 리듬을 증폭시킨다. 바탕색도 흑백 위주에서 감청색, 레드, 그레이, 핑크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의 궤적을 보여주는 작품도 전시된다. 뉴욕 작업실에서 엉덩이가 짓무를 정도로 매달렸던 한 작품을 가리키며 그는 말했다. “6개월 동안 눈 버리고 머리카락 빠져가며 하나하나 손으로 도형을 그릴 때,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나 회의도 들었죠.”

남들이 유행을 좇아갈 때 외롭게 회화를 고집한 그의 선택은 헛되지 않았다. 현대미술의 치열한 전쟁이 펼쳐지는 뉴욕에서도 자기만의 세계를 집요하게 밀고 나간 그의 작업은 서서히 인정을 받고 있다. ‘아트 포럼’ ‘아트 인 아메리카’ 등 미술잡지도 이번 전시를 취재할 예정이다.

그의 작품은 엄청난 수공업적 노동을 요구한다. 숙련된 화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먼저 바닥에 옻이나 아크릴 물감을 수십 번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기를 반복해 평평한 화면을 만든다. 여러 겹으로 된 화면은 깊이와 물성을 드러낸다. 거기에 그가 컴퓨터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그려 넣는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접합된 그의 작업은 손과 머리를 통한 명상의 과정과도 닮아 있다.

화가의 손으로 빚어내는 회화의 힘을 굳게 믿는 작가 이상남. 그의 시선은 지금 세계를 향하고 있다. 전시는 10일부터 5월 7일까지. 02-515-9496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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