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상대적 박탈감’이 수명을 줄인다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평등해야 건강하다/리처드 윌킨슨 지음·김홍수영 옮김/392쪽·1만7000원·후마니타스

#1.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가장 부유한 지역에 사는 16세 백인 여성의 기대수명은 86세이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사는 16세 흑인 여성의 기대수명은 70세에 불과했다. 영국 런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말단 공무원이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고위 관료보다 4배가량 높았다.

#2. 미국 50개주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소득이 불평등한 주에 사는 사람일수록 불신이 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득 불평등지수가 가장 낮은 뉴햄프셔 주민들이 “기회가 되면 타인들은 나를 이용할 것이다”고 답한 비율이 15%를 밑돌았으나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루이지애나 주는 이 비율이 45%에 육박했다. 미국 50개주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소득 불평등지수가 높을수록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잘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흔히 예전보다 나아진 물질적 풍요, 기술의 발전, 산업화, 근대화, 문명화를 가리킨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 전체의 부가 성장할수록 반드시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선진국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줄어들고 우울, 자살, 비만을 나타내는 사회지표는 증가할까.

이 책은 도덕적 수준에서 불평등은 나쁘고 평등은 좋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영국 노팅엄대 의대에서 사회역학과 공중보건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건강과 삶의 질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사회 역학(疫學) 실증 연구들로 입증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수많은 연구 결과는 건강, 삶의 질과 사회 구조, 사회적 지위와 계급, 불평등 사이의 상관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고치게 됐지만 사회적 박탈감이 주는 사회·심리적 영향으로 건강 수준이 낮아진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이 이렇다고 불평등한 현실을 기계적 평등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불평등으로 인한 삶의 질의 약화가 일부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질적 생활수준의 향상이 항상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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