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학]날 내버려둬, 더는 상처받기 싫어…‘완득이’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 완득이/김려령 지음/212쪽·8500원·창비

전직이 폭력배로 의심되는 담임 ‘똥주.’ 카바레 삐끼인 난쟁이 아버지와 피도 안 섞인 어리바리 삼촌. 생활보호 수급 대상자인 가난한 살림살이. 행복입네 불행입네 따지는 것도 까마득하다. 공부는 싫고 그렇다고 마땅히 딴 것도 관심 없고. 고등학교 1학년, 완득이에게 하루는 그저 ‘하루’일 뿐이다.

마땅한 인생 목표도 없는 인생. 그저 없는 듯 살고 싶다. 그런데 뭔가 자꾸 뒤엉킨다. 존재도 몰랐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등장. 심지어 베트남 사람이다. 같은 반 1등인 정윤하는 왜 자꾸만 따로 만나자는 걸까. 생전 처음으로 하고픈 킥복싱을 왜 아버진 계속 반대할까. 똥주는 왜 날 놓아버리지 않을까.

‘완득이’는 평범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지지리도 궁상’인 한 소년의 이야기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삐뚤어지기 십상인 환경. 하지만 완득이가 선택한 건 ‘벽’이었다. 무감해야 상처도 덜하니깐. 세상에 대한 관심도, 세상이 주는 관심도 부담스럽다. 그저 교회에서 ‘담임 죽어라’ 기도하고 나면 속이 좀 편해질 뿐.

그 정도에 그쳤다면 이 소설은 일련의 청소년 성장기에 그쳤을 터. 실제로 ‘가난한 달동네 아이’란 포맷이나 이야기 전개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뻔함’을 캐릭터들이 뛰어넘는다. 가난하지만 깨지지 않은 그 심성이 인물들 사이에서 공명을 일으킨다.

가장 비중이 작은 조연인 이웃집 50대 아저씨를 보자. 시끌벅적한 완득이네와 이웃 담임에게 언제나 윽박지르던 못된 심보. 결국 완득이네 똥차에 낙서까지 한다. 싸움이 붙고 경찰서에도 끌려가고. 하지만 저녁 초대에 머쓱한 표정으로 등장. 입에 욕이 달렸지만 어느새 정겹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동네. 스스로도 ‘멈춰버렸다’고 생각한 완득이의 변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알고 보면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 공부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같던 윤하마저 자기처럼 아픔이 많았다. 모두 상처받았기에 그렇게 움츠려 있었던 것을. 그걸 깨달을 때 완득이 마음의 벽도 천천히 허물어진다.

소설 ‘완득이’는 경쾌하다. 구구절절 설명도 하지 않는다. 미사여구 치장도 없다. 만화 컷이 끼여 있어 오히려 가벼울 정도. 하긴 그렇다. 세상이 이렇고 저렇고, 그런 어른들의 사족이 오히려 청소년들을 얽맬 때가 많지 않나. 완득이는 완득이일 뿐. 아이들은 아이들 그대로 봐주면 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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