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우리 나무에 담긴 역사의 비밀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1분


그를 처음 만난 건 2001년 가을, 그의 서울 강연회에서였던 것 같다. 그의 저서 ‘궁궐의 우리 나무’를 읽은 직후였다.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에서 자라는 우리 나무들을 샅샅이 뒤져 그 특징과 의미를 고찰한, 매우 독특한 책이었다. 강연도 재미있고 유익했다. 저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나무를 연구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그는 나무의 조직을 연구하는 임학자다. 그가 문화재를 만난 것은 1970년대 일본 교토(京都)대 유학시절이었다. 교토와 나라(奈良)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수많은 문화재가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곧바로 목조 문화재에 빠져들었다.

박 교수의 연구 성과는 흥미롭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90년대 팔만대장경 재질 분석을 통해 팔만대장경 제작지에 대한 통념을 뒤엎은 일. 그동안의 통설은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경남 합천 해인사까지 옮겼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박 교수는 늘 이런 의문을 가졌다. ‘280t에 이르는 팔만대장경 경판을 강화도에서 만들어 어떻게 합천까지 달그락거리는 달구지에 실어 나를 수 있었을까.’ 그래서 경판의 재질을 분석했다. 전국적으로 자라는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주종이었고 따스한 남부지역에서만 자라는 후박나무 거제수나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박나무와 거제수나무로 보아 강화도가 아니라 남해안 지역에서 만들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그는 또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의 목관이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金松)으로 제작된 사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 두 그루와 전나무 두 그루가 사실은 소나무 한 그루와 곰솔(소나뭇과에 속하지만 소나무와는 다른 나무) 세 그루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7년 전 그날, 박 교수와의 만남은 뒤풀이 자리로 이어졌다. 나무 하나에 이처럼 무궁무진한 역사의 비밀이 담겨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숭례문 화재로 나무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복원에 쓸 만한 지름 1m짜리 소나무를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우리는 우리 나무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느냐고. 속리산 앞의 정2품송의 건강은 어떠한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위해 심었던 화성 용주사의 회화나무는 왜 죽어가고 있는지,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과연 어떠한지….

강원 영월군 단종의 무덤인 장릉에 가면 초입의 소나무들이 매우 이색적이다.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는지 무덤을 향해 절이라도 하듯 묘하게 비틀어져 있다. 나무들은 저렇게 인간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있는데 우리는 나무에 얼마나 무례했던가.

이번 주말 박 교수의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를 읽기를 권한다. 여기에 나무학자인 전영우 국민대 교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도 추천한다. 책을 열면 우리 나무가 보이고 나무에 담겨 있는 우리 역사가 보일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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