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임진왜란 극복한 ‘류성룡 리더십’

  • 입력 200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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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전환기에는 세상 다스림의 지혜를 담은 책을 많이 읽는다. 송대까지 중국사를 정리한 ‘십팔사략’도 유행을 탈 만하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며 한 고조 유방이 시서를 강(講)하는 선비를 내치려 하자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어찌 말 위에서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천하를 다스림은 문(文)의 힘”이라고 선비는 설득한다.

눈을 들어 동북아를 보면 강대한 중국과 야심 찬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이 한반도가 수천 년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 온 것은 세계사의 기적에 들지 싶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나라는 속수무책인데 명의 원병이 오고 이순신이 싸움에 이긴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하늘의 도움이다.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고 안도하는 위정자가 있었다. 전시총리 서애 류성룡이다.

그의 타계 400주기를 맞은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이 열렸다. 오늘날 서애의 말씀을 되새기자는 뜻이다. 아울러 최근 나온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위대한 만남’(지식마당)은 서애의 행적이 우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나침반이란 확신으로 일관한다.

왜군의 빠른 진격에 놀란 임금이 명나라로 가려 하자 서애는 “임금께서 우리 땅을 단지 한 걸음이라도 떠나시면 조선 땅은 우리 땅이 아닙니다”라고 충언한다. 평양 언저리에서는 피란길을 함경도로 잡으려 한다. 전략적으로 불가할 뿐더러 사적 이해를 앞세울 수 없다고 직언한다. “여러 신들의 가족 대부분이 그리로 피한 까닭에 그곳으로 가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신의 늙은 어머니 또한 강원도나 함경도에 머물고 있겠지만 어찌 나라의 앞날을 우선하겠습니까?”

임란 직전, 병조판서 서애는 정읍현감 이순신을 일곱 계단이나 훌쩍 높여 전라좌수사로 앉힌다. 저자는 육군을 해군 장수로 바꾼 게 그 얼마나 기막힌 발상의 전환인가, 감탄 연발이다. 그래서 ‘위대한 만남’이다. “임금을 받듦에 죽음 말고 달리 없다”던 순신이 영국 넬슨을 능가한다는 점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것이다. 그 순신을 있게 만든 것은 물론 명을 상대로 왜가 조선 분할을 획책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분골쇄신한 서애야말로 한국의 처칠임을 이제야 알겠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혼이 난 미국은 나치의 유럽 불장난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영국 전시총리는 뻔질나게 미국으로 가서 설득한다. 의회에서는 어머니가 미국 여성이었다며 “조국에서 모국으로 왔다”고 열변한다. 사람 마음을 녹이는 데는 어머니만 한 말도 없다. 마침내 미국의 참전을 이끌며 전승한 경위를 적은 처칠의 ‘제2차세계대전사’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서애의 임란 회고록 ‘징비록’은 이제야 이 시대의 뜻있는 선비의 저술로 몸을 입어 뜨거운 공감을 청한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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