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가슴으로 보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그림과 눈물’

  • 입력 200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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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눈물/제임스 엘킨스 지음·정지인 옮김/408쪽·1만5000원·아트북스

그림 앞에서 울어본 적 있는가. 그림 앞에서 정말로 우는 사람이 있는가.

미국의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늘 이 점이 궁금했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 여러 신문과 잡지에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린 경험담을 들려 달라’는 광고를 냈다. 설마 했지만 놀랍게도 전화, 편지, e메일 등 400통이 넘는 답신이 들어왔다.

저자는 그 내용을 꼼꼼히 읽고 분석한 뒤 그들과 다시 편지를 주고받고 미술관을 찾아 관련 작품을 직접 감상하면서 사람들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궁금증을 풀고자 했다. 작업은 2년간 계속됐고 이 책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요즘 수많은 미술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눈물을 통해 그림을 이해하려는 시각이 색다르고 흥미롭다. 원제 ‘Pictures & Tears’.

저자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으로 마크 로스코의 예배당 추상화를 꼽았다. 미국 휴스턴의 한 예배당에 걸려 있는 로스코의 추상화 14점. 예배당을 찾은 저자는 거기 방명록에 적혀 있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침묵이 깊숙이, 심장까지 찌르고 들어온다’ ‘다시 한 번 나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나도 울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예배당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녀까지 발견했다. 저자에게 그건 놀라운 감동이었다.

자주색 검은색이 칠해졌을 뿐 특별한 형상도 없는, 어찌 보면 텅 빈 직사각형 캔버스에 불과한 작품인데 사람들은 그 앞에서 왜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거대한 화면의 외로움 또는 공허함, 어두운 하늘이나 깊은 물을 연상시키며 구름 같고 바람 같은 검은색과 자주색의 경이로움 때문일 것”으로 설명했다.

디리크 바우츠의 ‘울고 있는 마돈나’의 경우, 그림 속 마돈나는 예수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했는지 눈꺼풀은 부어올랐고 두 눈은 충혈됐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비탄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기에 더 슬프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이 그림을 보고 가슴 뭉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저자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부추길 의도가 개입된 작품”이라면서 좀 아쉬워한다.

책에 소개된 편지들도 매우 재미있다. 그림 자체는 물론 캔버스에 천을 고정하는 못에까지 감동을 받는다는 사람, 피란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눈물 흘리는 사람 등등. 저자는 이들의 고백이야말로 진실한 예술 체험이라고 상찬을 보낸다.

그런데 유명한 미술사학자 E H 곰브리치의 말이 의외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운 적은 있지만 그림 앞에서 울어본 일은 기억에 없습니다.” 보통 사람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림 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니.

이 대목에 저자의 진정한 메시지가 있다. 공허한 지적 교양이나 형식적 고상함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순수하게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그림 사랑을 통해 뜨거운 눈물을 한 번 흘려본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다는 것이다.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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