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선생이 작곡가라면 난 연주자였죠”

  • 입력 2007년 12월 2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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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처럼 마구 휘갈겨 쓴 메모, 비디오 작품의 설계도면, 작품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젊은 백남준의 모습….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한 스튜디오. 이곳엔 고(故) 백남준 씨의 ‘흔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백 씨의 평생 동료였던 폴 개린(50) 씨가 설치미술가 강익중 씨와 함께 백 씨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 ‘해피월드-남준 백’을 제작 중인 현장이다.

개린 씨는 1981년부터 백 씨가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던 1996년까지 비디오 작업을 함께 해 온 미술가. 백 씨가 생전에 “너는 천재야”라고 말하곤 했을 정도로 아꼈던 인물이다. 아침 점심 식사는 물론 저녁까지 함께 든 날이 많을 정도여서 백 씨의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 씨 다음으로 그에 대해 많이 알았던 사람으로 꼽힌다.

“1981년 쿠퍼유니언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워낙 기계에 관심이 많아 비디오 작업에 푹 빠져 있었죠. 구보타 여사의 소개로 시간당 3달러를 받고 일을 시작했는데 백 선생님이 ‘자네는 저임금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는군’이라며 만족스러워하셨어요.”

개린 씨의 재능을 눈여겨본 백 씨는 그와 정식 계약을 한 뒤 비디오 제작을 개린 씨에게 일임했다. 작품 제작에 들어가는 비디오 영상물의 저작권도 개린 씨가 갖는 조건이었다.

“백남준 선생님이 작곡가라면 저는 그 악보(score·스코어)에 따라 작품을 만드는 연주자였지요. 실제로 우리는 작업하면서 ‘스코어’라는 말을 썼어요. 저는 백 선생님의 스코어를 바탕으로 비디오 영상물을 제작했습니다. 백 선생님의 비디오 작품 중 97%는 제 손을 거쳤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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