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효신]‘일상의 디자인’이 진짜 디자인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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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기능적 성격이 강한 ‘도안(圖案)’이라는 말을 밀어내고 전문 용어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1966년 ‘수출품의 디자인 양질화’를 목적으로 개최된 상공미전(현재의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이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펴고 있던 당시 정부는 이 전람회를 적극 지원해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이던 섬유 등 각종 제품 포장을 위한 디자인을 활성화했다.

1970년대에는 라디오 전축 텔레비전 등 ‘가전 3종 세트’를 위한 디자인이 전성기를 맞았고 한국 고유 디자인인 포니 자동차의 탄생과 함께 각종 매체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게 됐을 때쯤 디자인이라는 말은 ‘아름답게 꾸미다’라는 뜻을 가진 일반적 어휘가 됐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현대의 디자인은 전자제품의 겉모양뿐 아니라 제품을 작동시키는 내부 프로그램에도 관여한다. 또 우리 시대에 디자인이라는 말은 형태적인 멋 내기와 기능성 향상을 위한 도구 역할뿐 아니라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설계와 기획을 의미하게 됐다.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이렇게 산업화의 진행에 따라 다양하게 확장되고 고급화돼 왔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의 디자인을 진화시킨 주역은 관련 산업을 주도한 대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산업이 현대화됨에 따라 대기업 경영자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됐고 그에 따라 대기업은 소비자의 취향과 욕구를 제품 외형과 프로그램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세계 여러 곳에 디자인연구소를 개설해 지역 특성에 맞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 외국의 전문 디자인 회사에 의뢰해 다국적 스타일의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물론 디자인의 생산자는 대기업만이 아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중앙 및 지방정부도 디자인을 생산한다. 그러나 수준 높은 대기업의 디자인 마인드와 퀄리티에 비해 정부와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디자인의 질적 수준은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주관해 만든 디자인을 공공(公共)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관공서의 건축물과 실내디자인을 포함해 도로 및 공원 등 환경디자인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처럼 문화재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환경 특성에 별반 차이가 없는 나라일수록 지역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미래지향적 공공 디자인이 필요하다.

화폐나 여권, 주민등록증과 같이 정부가 발행하는 증빙 문서도 공공 디자인의 중요한 품목이다. 이렇게 항상 몸에 지니는 사소한 물건의 디자인 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시각적 정체성이 형성되고 문화적 수준도 높아진다. 정부가 공공 디자인에 대해 계획적이고 적극적이며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중소기업이 만드는 제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사소하더라도 일상생활에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매우 긴요한 품목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소기업이 만드는 대부분의 제품 디자인 수준은 공공 디자인만큼이나 낮다.

정부는 이렇게 뒤처진 공공 디자인과 중소기업 제품 디자인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디자인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겨 우수한 회사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환경과 사용하는 제품들이 서로 시각적 조화를 이룬 세상을 상상해 보자. 디자인은 결코 거창하고 값비싼, 특별한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고 사소한, 바로 눈앞에 있는 사물의 디자인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박효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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