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따라 세계일주]체코 프라하 공연투어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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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첫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창밖으로 하얗게 눈 덮인 프라하성이 보였다.

프라하의 눈을 밟으며 공연장으로 갈 생각을 하니, 아침부터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모차르트가 ‘돈 조반니’를 이곳에서 작곡했다니, 그도 나처럼 마법 같은 프라하의 겨울 아침을 사랑했던 건 아닐까.

그러나 추운 날씨 탓인지 프라하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던 길거리의 마리오네트 인형들은 보기 힘들었고 광장과 역 앞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연주하던 거리의 예술가들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프라하 거리 곳곳의 작은 극장에서는 여전히 모차르트의 음악과 사진을 내건 상업 공연이 성업 중이었는데, 예전에 왔을 때에 비해 안타까울 정도로 변질된 모습이었다.》

빛 바랜 ‘모차르트의 마법’

○ 상업화된 부실 공연 많아 옛 명성 찾아보기 어려워

간이의자가 놓인 성당 안에서 10명 안팎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매일 밤 모차르트와 비발디, 베토벤 등의 곡을 1시간 동안 연주하고 우리 돈으로 4만5000원 정도를 받는 형식이었는데, 티켓을 파는 호객꾼들은 실제와 다른 화려하고 멋진 공연장 사진을 들고 나와 마치 싼 가격에 최고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인 양 흥정을 하곤 했다(공연장이 허름하고 악기 수가 적다고 꼭 공연이 부실한 건 아니지만, 기대에 차서 이런 티켓을 구입했던 관광객들이 실망하고 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물론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같은 최고 실력의 악단이 선사하는 모차르트 공연도 있지만 초행길의 일반 여행객이라면 호객꾼들이 끌어들이는 ‘모차르트 콘서트’와 제대로 된 공연을 구분해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제대로 된 모차르트 공연을 감상하고 싶다면 좀 비싸기는 하지만(10만 원을 호가함), 프라하 시민회관 내에 위치한 스메타나 홀과 프라하 국립극장의 정규 클래식 프로그램을 찾아서 사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모차르트에 가려진 듯하지만 체코의 자랑은 또 있다. 체코는 폴란드와 함께 동유럽의 연극 메카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프라하에는 매일 밤 새로운 연극들이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었다. 특히 현지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록시 극장과 콜로랏 극장, 실험극을 주로 상연하는 디스크 극장, 청소년 공연을 많이 올리는 들루하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를 살펴보니 절반 이상이 드라마(연극) 종류였다.

그중에서 가장 흡족했던 공연장은 체코의 연극과 코미디만 올린다는 자브리들리 극장이었다. 중심가에 있지만 좁고 어두운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어 손에 지도를 들고서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객석은 300여 석 규모에 창고 같은 허름한 무대, 펍의 나무의자를 객석 곳곳에 끼워 넣은 모습이 체코인들의 소박함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했다.

이 공연장에 로비는 아예 없었다. 아니, 로비 대신 펍으로 바뀌어 공연 직전까지 관객들은 끊임없이 와인과 맥주를 사 마셨다. 공연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들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의 펍으로 직행하더니 와인을 한 잔씩 사서 공연장 뒤로 갖고 들어가곤 했다.

공연 시작 직전까지 전혀 들어갈 기색이 없던 관객들은 마지막 입장 벨이 울리자, 다들 마시던 술을 ‘원샷’ 하더니 순식간에 극장으로 들어갔다. 어찌나 재빠른지 입장하고 막이 올라가기까지 1분이나 지났을까 싶었다.

○ 단돈 2000원에 최대규모 국립극장 오페라 감상

자연스럽게 음주관람으로 시작된 이날 공연은 ‘Cesta do Bugulmy’. 우리말로 ‘뷰굴미로 가는 길’이라는 연극이었는데, 영어로 된 안내가 없어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비주얼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며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상처와 어두움을 표현한 작품이었다(고 나는 이해했다).

연극이 끝난 후 만난 공연 관계자에게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줄거리를 설명해 봤다. 그랬더니 무척 놀라워하며 대뜸 박수를 치는 거였다. 맞았나 싶어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더니, 그는 “예술엔 정답이 없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봤으면 그게 정답이라나.

프라하 공연투어 열흘째. 이번엔 프라하 최고 규모의 나로드니 국립극장을 찾았다. 오페라 노르마가 공연되는 날이었다. 으레 다른 공연장들보다 비쌀 것을 예상하여 학생이라고 거짓말하려던 참이었는데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티켓박스 아주머니는 “너를 위한 특별학생티켓이 있지” 하는 거다. 가격은 40코루나. 우리 돈 2000원! 믿을 수가 없었지만, 학생이 아니었던 나는 그 티켓을 사서 도망치듯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극장에 들어가 보니 왜 그렇게 싼지 알 수 있었다. 걸어서 6층, 천장에 붙은 조명이 옆에 보일 지경이었다. 헉헉대며 자리에 앉으니, 까마득한 아래 쪽으로 오케스트라 전체가 내려다보였다(객석 1층에선 지휘자 머리만 보이는데).

기대가 컸던 체코는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은 넘쳤지만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입 뮤지컬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듯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계와 달리 프라하의 공연은 그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와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미끼로 관객이 아닌 관광객의 볼거리를 만들기에 급급한 듯해 씁쓸했다.

유경숙 공연기획자 prniki1220@hotmail.com

▼ 전통인형극‘마리오네트’▼

예쁘고 정교한 인형

움직임은 엉거주춤

체코 공연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마리오네트’다.

‘마리오네트’는 실로 매단 인형을 위에서 잡고 조종하는 체코의 전통 인형극인데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체코의 ‘마리오네트’ 극장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단다. 일본과 대만에서 온 단체 관광객과 함께. 나도 수많은 관광객처럼 ‘마리오네트’의 본고장에서 ‘오리지널’ 공연을 본다는 기대를 품고 표를 사서 봤다. 프라하에서 내가 본 것은 ‘돈 조반니’였다. 모차르트가 프라하에서 ‘돈 조반니’를 초연했다는 이유 때문에 체코에서는 ‘돈 조반니’ 공연이 넘쳐났는데 인형극인 ‘마리오네트’의 대표 레퍼토리 역시 ‘돈 조반니’였다. 체코의 전통 인형들은 그 자체는 예쁘고 정교했지만 솔직히 공연 자체만 놓고 보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체코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으로 본다면 큰 기대를 하지 말 일이다.

마리오네트 인형들의 움직임은 기대보다 단순해 그저 팔다리를 들어올리거나 고개를 숙이고 양쪽으로 돌리는 정도일 뿐이었고 극을 이끄는 것은 CD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음악뿐이었다. 공연장 총괄 매니저를 만나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돈 조반니’에 나오는 7명의 인형 캐릭터를 조종하는 사람은 4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들은 전문 인형 조종자는 아니라는 거였다. 실제로 공연 15분 전에 극장에서 만난 공연장 관계자가 커튼콜 때는 인형을 움직인 스태프로 무대 인사를 나오기도 했으니까.

나와 같은 공연을 본, 영국에서 온 젊은 여성 관광객은 “3시간 이상 하는 오페라 ‘돈 조반니’는 피곤해서 보기 힘들지만 인형극으로 보니 나름 괜찮았다”고 했다. 물론 공연 내내 피곤해서 잤다는 관광객도 있었지만. 엉성하게 움직이는 무표정한 마리오네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밖에 못 해도 어쨌든 너는 나를 보러 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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