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거리로 뛰쳐나간 그들,자유를 노래하다

  • 입력 2007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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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 더 맨해튼.’ 9월 말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 ‘록펠러센터’에 난데없이 록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밴드 ‘E스트리트’가 나타났다. 미국 내에서만 60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자랑하는 톱 가수의 길거리 공연은 미국 전역에 녹화 중계됐다. 이후 미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그의 대표작 ‘본 인 더 유에스에이’를 본떠 ‘본 인 더 맨해튼’으로 불렀다.

미국 록 음악계의 전설이 왜 길을 떠났을까? 그 길에 무슨 매력이 있는 것일까? 무대와 지하 연습실을 박차고 나온 ‘버스커’들이 궁금하다. 길을 떠나고 싶은 밴드의 이모저모를 6하 원칙으로 알아봤다.》

[WHAT] 자유 활동에서 소속제로

2000년대 초 록 음악 위주였던 길거리 밴드는 힙합, 재즈 등을 거쳐 국악, 클래식, 오카리나 연주까지 장르가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서울시 산하 단체 ‘서울문화재단’이나 지하철역 공연을 담당하는 ‘레일아트’, 서울 홍익대 앞 인디음악 전문사인 ‘캬바레 사운드’ 등 길거리를 확보한 기관에 가입해 활동하는 밴드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김영호 문화사업팀장은 “관련 단체로부터 해당 장소에 대한 공연 허가를 받아 공연 도중 생길 수 있는 신고나 시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방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거리 공연 문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버스킹 박스’. 공연을 본 관객들이 돈을 넣는 상자다. 멤버들은 보통 악기함을 펼쳐 놓거나 모자를 뒤집어 놓고 연주를 한다. 수입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적게는 하루 몇 천원부터 많게는 몇 십 만원까지 번다. 대부분 기름값이나 차비, 밥값으로 사용된다.

[WHO] 지하철역 밴드부터 보아까지

한국 길거리 밴드의 역사는 5인조 밴드 ‘오! 부라더스’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1996년 지하철역과 도심 한복판에서 게릴라 공연을 펼치며 활동한 이들은 2001년 데뷔 음반을 발표해 지금까지 4장의 앨범을 내는 등 성공한 길거리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YB(윤도현 밴드)’가 차량에 무대를 만들어 전국을 돌았고 4인조 록 밴드 ‘노브레인‘은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 깜짝 공연을 펼치는 등 기성 밴드들도 길거리 공연에 도전하고 있다. 보아, 시아준수 등의 아이돌 스타들이 출연한 삼성전자 애니콜의 새 광고 ‘애니 밴드’도 건물 옥상에서 공연을 하는 길거리 밴드의 얘기를 담고 있다.

연습실에서 연주하던 직장인 밴드들이 길거리로 나와 공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9월부터 길거리 밴드로 활동 중인 직장인 밴드 ‘콜리’의 멤버 박성진(31·피트니스센터 코치) 씨는 “연습실과 공연장에서 연주를 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짜릿함 때문에 대중에 대한 불안감마저도 즐겁다”고 말했다.

[WHEN WHERE] 무계획이 상책은 아니다

길거리 밴드들이 즐겨 찾는 장소는 홍익대 앞 놀이터를 비롯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청계천, 강남역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방의 경우 부산의 서면역 사거리와 남포동, 대구 동성로,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은 힙합밴드들이 주류를 이루는 등 특화된 곳도 있다.

과거 길거리 밴드들은 시간과 장소에 대한 ‘무계획’이 하나의 문화처럼 여겨져 왔다. 최근에는 이런 문화도 바뀌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레일아트의 웹사이트 홈페이지에는 길거리 밴드들의 한 달 치 공연 시간표가 게시될 정도로 체계적이다. 이름이 알려진 밴드들은 축제나 행사에 초청을 받기도 한다. 지난달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4인조 길거리 밴드 ‘어쿠스트릿’과 ‘캐비닛 싱얼롱즈’가 초청돼 정식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은 채 움직이는 길거리 밴드들은 여전히 단속을 피해 다니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길거리 공연을 제지할 특별한 법적 규정은 없다.

[WHY] 자유 그리고 도전

서울문화재단에는 올해 20여 개의 길거리 밴드가 가입해 현재 77개의 길거리 밴드가 소속돼 있다. 길거리 밴드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평론가 성우진 씨는 “방송 무대나 대형 기획사 오디션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음악을 하는 일이 자유이자 하나의 도전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라며 “길거리가 주는 즉흥성과 생동감이 젊은 세대들에게 큰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습실이나 공연장을 구하지 못하는 직장인 밴드들엔 일종의 대안처럼 여겨지고 있다. 길거리 공연자들의 모임인 ‘대학로 거리공연 아티스트(ADSP)’의 박하재홍 의장은 “다른 밴드들은 음악 활동으로 돈을 벌지만 길거리 밴드는 비상업적”이라며 “이런 이미지를 경력 홍보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회성으로 길거리 밴드를 결성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HOW] 길거리 밴드가 되고 싶다면 오디션을 봐라?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 유럽과 미국 뉴욕, 샌타모니카 등지에서 길거리 밴드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 했다.

1990년대에는 일본 도쿄의 시부야, 하라주쿠 등이 ‘공연의 메카’로 알려져 수많은 밴드가 이곳에서 길거리 공연을 펼쳤다. 데뷔 전 시부야, 요요기공원 등에서 춤을 췄던 3인조 댄스그룹 ‘윈즈’나 ‘시부야 역 앞 길거리 밴드’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록 밴드 ‘두 애즈 인피니티’(지금은 해체됨)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나 동호회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자유 밴드’와 특정 단체에 소속된 밴드가 있다. 소속사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우 오디션에 합격한 밴드만이 길거리 공연을 할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매주 수요일 서울 용두동에 있는 재단에서, ADSP는 매주 토요일 대학로 길거리에서 오디션을 한다.

서울문화재단 김영호 문화사업팀장은 “소속제는 한 장소에서 공연 허가를 받는 일종의 허가제 개념으로 공간의 제약이 있다”이며 “앞으로는 유럽의 경우처럼 길거리 밴드를 상대로 자격증을 발급하는 라이선스제를 도입해 어떤 곳에서든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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