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다…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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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윤해동 지음/269쪽·1만8000원·휴머니스트

19세기 이후 역사학이 실증의 과학을 지향했다면 20세기 후반 이후 역사학은 정신분석학에 가깝다. 여기서 역사는 일종의 집단기억이 되고 국사는 거대 타자인 국가나 민족에 의해 선별된 기억이 된다. 그리고 역사학자는 이 거대 타자에 의해 억압된 기억을 불러냄으로써 온전한 진실과 대면하게 도와주는 정신분석의가 된다.

그런 맥락에서 1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식민지, 분단,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한 한국만큼 연구대상이 될 ‘임상환자’도 드물 것이다.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한국 근대사의 집단무의식을 파고드는 정신분석학적 역사학을 개척해 가고 있다.

그가 치유하고자 하는 역사의 정신질환은 근대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만적 기억이다. 광복 이후 한국인은 식민시대와 탈식민시대를 단절의 역사로 재구성한다. 이에 동원된 게 식민지수탈론이다. ‘친일파가 청산돼야 민족정기가 바로 선다’는 주장은 그 연장선이다. 일제의 통치방식을 악랄하고 차별적인 것으로 회상하면서 일본인 일반을 근면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저자 어머니의 이율배반적 기억은 그런 왜곡된 집단무의식의 산물이다.

이를 비판하고 나선 게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식민시대를 겪으며 형성된 근대 탈식민시대에도 연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수탈과 개발이 근대라는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제국의 근대가 식민지를 필요로 하듯 식민지의 근대도 제국에 의해 추동된다. 따라서 근대는 제국과 식민지의 긴밀한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여기서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다”라는 저자의 통찰이 도출된다. 이는 다시 제국 대 식민지의 이분법에 갇힌 ‘식민지수탈론’과 문명과 야만의 폐쇄회로에 갇힌 ‘식민지근대화론’이 모두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근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국가 발전을 위해 국민을 동질화하고 효율화하려는 근대적 규율 권력을 내면화한 논리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민지 근대’의 메커니즘을 보여 주는 공간으로 만주국에 주목한다. 일본의 괴뢰국으로 인식돼 온 만주국은 제국(일본)뿐 아니라 그 제국의 이등국민을 꿈꾸는 식민지 조선인의 열망이 투사된 공간이자 계획경제를 비롯한 온갖 정책실험이 이뤄지며 근대적 잡종성이 실현된 공간이었다.

만주국의 관료와 군인으로서 ‘통제’와 ‘계획’으로 상징되는 그 정책실험에 참여했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박정희가 각각 일본과 한국의 전후 경제를 이끌었다. 이는 저자가 말하는 ‘식민지 근대의 잡종성’뿐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 일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의 가능성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연구가 더 기대되는 대목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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