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세대 작가들 ‘비루한 삶’ 거침없이 까발리다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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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김애란 ‘성탄특선’ 중에서)

그렇지만 김애란(27) 씨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다걸기(올인)해도 살 수 없는 이 ‘생활의 여유’가 얼마나 뼈아픈 박탈감을 주는 것인지를 알고 있다.”(평론가 정여울)

단편 ‘성탄특선’뿐이 아니다. 소설집 ‘침이 고인다’ 중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서 화자의 이력서를 본 선배는 “원, 콘텐츠가 없어”라며 혀를 찬다. “선배, 콘텐츠는…?”이라는 화자의 물음에 선배는 즉답한다. “어떻게 만들긴, 돈으로 만들지.”》

“낭만적 실업은 없다”

최근 20대 후반∼30대 초반 작가들이 물질적 가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부자 되세요”란 광고 문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금전과 자본에 대한 열망이 공인됐으나 문학 분야는 그것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겼던 게 사실. “당시 소설의 주인공들은 직업 없이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이른바 ‘문화백수’의 모습이었다”고 평단은 지적한다.

평론가 이광호 씨는 “386이나 그 세대에 근접한 작가들의 정서는 세속적인 가치에 대해 적나라하게 말하면 안 된다는 허영이 있었던 듯하다”면서 “그래서 비루하게 묘사하기보다 판타지나 유머로 넘기려고 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젊은 작가들은 이처럼 ‘즐거운 실업’으로 여겨졌던 사회적 이슈를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응시하고 있다.

김미월(30) 씨의 소설집 ‘서울 동굴가이드’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유통기한’)나 PC방 아르바이트(‘너클’)를 하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와 김서령(33) 씨의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중 단편 ‘고양이와 나’에서 야한 이야기로 돈벌이나 하는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에 대한 묘사는 민망할 정도로 구체적이다.

정한아(25) 씨의 장편 ‘달의 바다’에서 화자가 미국행을 감행하는 계기는 멋진 꿈을 찾아서가 아니라 언론사 시험에 번번이 낙방해 아버지의 갈빗집에서 일해야 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들 작가는 이처럼 물질적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발언하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을 기를 쓰고 준비하는 모습이라든지 과외나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 등 계약직의 불안정한 모습을 선배 작가들이 ‘쿨하게’ 그렸던 것과 달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문제로 파악하면서 구차하고 절박하게 묘사한다. 황정은(31) 씨가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발표한 단편 ‘오뚝이와 지빠귀’에는 실업 때문에 기가 죽은 탓으로 진짜 난쟁이가 돼 버리는 주인공이 나올 정도다.

평론가 장은수 씨는 “젊은 작가들은 빈곤이 얼마나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들만의 윤리 감각을 전면으로 드러낸다”고 평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최소한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이 이들 작품의 특징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광호 씨는 “컴퓨터게임이라는 환상적인 공간(김미월), 작지만 ‘방’이라는 자립적인 공간(김애란) 등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비루한 삶을 견뎌 가는 방식으로 자존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영역을 갖고자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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