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금서 열하일기, 의문사를 부르고…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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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전2권)/김탁환 지음/상권 320쪽, 하권 296쪽·각권 9500원·민음사

백탑파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전작 ‘방각본 살인사건’과 ‘열녀문의 비밀’에서 18세기 말 엘리트그룹 백탑파의 활약을 펼쳐 보인 소설가 김탁환(39) 씨. 백탑파 연작 세 번째 소설 ‘열하광인’에서 김 씨는 개혁의 열정으로 넘쳤던 백탑파의 좌절을 보여 준다.

1792년 10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금서로 지목된다. 문체반정이다. 문장이 잡스럽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실은 정조가 백탑파로부터 등을 돌린다는 걸 의미했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 등 젊은 실학자로 구성된 백탑파는 정조와 뜻을 함께하며 국가의 혁신을 꿈꿨다. 그런데 그 정조가 “백탑파의 문체가 단정하지 못하다”며 탄압에 나선 것이다.

앞선 연작처럼 이번 작품도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는 의금부 도사 이명방. 종친으로 정조의 신임을 받아 온 그는 열하일기를 몰래 읽는 ‘열하광’ 모임의 회원이다. 같은 회원인 역관 조명수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데 이어 다른 회원들이 살해되고 급기야 이덕무도 독살된다. 이명방은 정조로부터 열하일기를 읽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백탑 서생을 감시하라는 밀명을 받고 난감한 처지가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표창으로 걸승을 찔러 죽이면서 살인 누명까지 쓴다.

극적인 연쇄 살인 사건과 안개 속 같은 정조의 마음, 여기에 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비애와 시대에 대한 풍자를 촘촘하게 엮었다. 주자학적 통치이념으로 무장한 개혁 군주 정조가 권좌에서 보수적인 절대 군주로 바뀌는 모습, 이상을 추구했던 백탑파가 그로 인해 몰락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속한 세상을 떠올리게 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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