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문학이 미술을 사랑했을 때

  • 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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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대표적 월간 문예지인 ‘문학사상’과 ‘현대문학’. 이들 잡지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표지를 미술 작품으로 꾸민다는 점이다.

‘문학사상’은 1972년 10월 창간 이래 지금까지 줄곧 화가들이 그린 문인 초상화를 표지화로 싣고 있다. 당대의 문제 작가 또는 인기 작가를 골라 초상화를 표지에 실었으니, 이 잡지의 표지는 초상화로 보는 한국문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문학사상’이 요즘 고민에 빠졌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줄어들면서 문인 초상화를 의뢰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지화를 바꾸는 방안을 조심스레 논의하기 시작했다. 35년 동안 고집해 온 문인 초상화 표지가 어떻게 바뀔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문학’도 1955년 1월 창간 이후 변함없이 미술 작가들의 작품으로 표지를 꾸며오고 있다. ‘문학사상’과 차이가 있다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표지에 싣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까지는 대부분 회화였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조각이나 설치미술 작품으로 장르를 확대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 동안이나 사진작가 구본창 씨의 작품을 표지에 실었다. 사진이 지금처럼 주목받지 못하던 당시로서는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표지뿐만 아니라 본문에도 미술 작품, 미술 전시평, 화가의 에세이, 심지어 갤러리 전시 광고까지 실을 정도로 미술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2002년 ‘현대문학’이 재정난으로 폐간 위기에 몰리자 미술 작가들이 기금 마련을 위한 기획전을 열어 이 잡지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이 두 잡지를 보면 문학과 미술, 출판과 미술의 인연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근대 출판의 역사에 있어 그 인연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4년 10월 국내 최초의 본격 문예종합 월간지 ‘청춘’이 창간됐다. 그 창간호 표지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1886∼1965)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 이는 격변의 근대기, 출판 문학 미술이 한 시대를 이끌어 가고자 했음을 보여 주는 소중한 흔적이다.

출판 문학과 미술의 인연은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인연을 낳기도 한다. 1970년대 현암사 조근태 대표는 작가 황석영 씨의 소개로 알게 된 서른 살 안팎의 젊은 화가 이두식(현재 홍익대 교수) 씨에게 종종 그림을 의뢰해 ‘한국의 명시선’ 등의 표지화로 사용했다. 표지화라서 대부분 소품이었지만 조 대표는 작품 한 점에 쌀 한 가마 값을 주었다. 당시 쌀 한 가마 값은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고생하는 젊은 예술가를 위해 선뜻 거금을 내준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조 대표는 이 씨 부부가 유학 갈 때에 여비를 보태 주기도 했다. 조 대표는 지금도 이 씨를 만나고 그 그림들을 보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마치 시서화(詩書畵)가 하나였던 옛 전통을 보는 듯하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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