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애가 혹시 조울증?

  • 입력 2007년 8월 2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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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생인 최모(15) 군은 초등학교 6학년 가을에 처음 우울증세를 보였다. 손목을 칼로 그으며 자살 시도까지 했다. 3개월 후 증세는 점차 호전됐다. 항우울제 치료를 받다가 잠시 치료를 중단했다.

치료를 중단하고 1개월쯤 지난 후 최 군은 공격적 행동을 시작했다. 충동적으로 친구의 얼굴을 때리고, 물건을 훔치는가 하면 교사를 가위로 찌르려고 덤비기도 했다. 수업 중 교실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뜨리기도 했다. 최 군은 소아·청소년 정신과에서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인간 감정의 양 극단을 오가는 조울증은 흔히 성인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 정신분석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도 나타난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소아·청소년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소아·청소년이 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서울시소아청소년광역센터 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보고한 아동·청소년 우울증 유병률은 1%인 데 반해 당사자인 자녀의 직접 보고에 의한 유병률은 6.5%로 무려 6배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 조울 주기는 성인보다 짧아

소아·청소년 조울증은 사회·심리적 원인보다는 유전과 뇌 기능 이상 등 생물학적 원인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조울증을 앓는 소아·청소년은 어른의 조울증과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성인보다 감정 변화 주기가 짧다. 지나치게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넘치다가 이유 없이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내며 울적해하는 모습이 2, 3일 간격으로 나타난다. 심지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유치원생의 경우 다른 아이들을 꼬집고 때리거나 엄마의 머리털을 쥐어뜯기도 한다. 과격한 행동을 해놓고 의기양양해하다가 혼을 내면 반항한다. 그러다가 금방 시무룩해져서 운다.

초등학생의 경우 평소 소심하고 자신감 없던 아이가 기분이 들떠서 친구들에게 욕을 해대고 싸움을 걸기도 한다. “전교 1등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하며 밤에 잠도 잘 자지 않는다.

조증을 보일 때는 과다행동 때문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전에는 들떠 있다가 오후에는 짜증을 내며 자주 우는 모습을 보인다.

중고교생은 무기력감에 시달리는 등 우울증세를 보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의 카드를 몰래 들고 나가 충동적으로 비싼 옷을 산다. 이유 없이 화가 나서 책상과 의자를 뒤엎는가 하면 과대망상에 빠진 모습을 보인다.

○ 체벌은 오히려 증세 악화시켜

소아·청소년 조울증은 ADHD, 품행장애, 정신분열증 등으로 오인돼 엉뚱한 치료를 받기도 한다. ADHD와 혼동돼 중추신경자극제로 치료를 받으면 충동성, 공격성이 심해져서 기분 주기가 더 심하게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초기 진단이 중요하다. 조울증의 진단은 정신 상담, 직접적인 행동 관찰, 심리 검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조울증 진단을 받으면 약물치료와 가족상담 치료를 병행한다.

약물치료는 감정 상태를 조절해 주는 ‘기분조절제’를 사용한다. 기분조절제만으로 상태가 좋아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항정신병 약물도 함께 복용해야 한다.

가족치료도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아이의 증세만 보고 벌을 줘서 고치려고 하는 부모가 있는데 체벌은 오히려 아이의 폭력 수위를 높이는 등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자녀의 조울증세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부모도 상담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몸과 마음이 한창 성장할 시기에 조울증에 걸리면 어른이 겪는 조울증보다 더욱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조기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도움말=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홍성도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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