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첨단기술은 왜 우리를 주눅들게 하나

  • 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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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파베르의 불행한 진화/킴 비센티 지음·윤정숙 옮김/360쪽·1만8000원·알마

이 책은 두꺼운 설명서가 딸린 첨단 테크놀로지 제품 앞에서 주눅 들었던 사람들에게 통쾌한 깨달음을 준다. 저자의 주장은 명료하다. 첨단 기술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건 무지한 사용자 탓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술이 외면한 것은 휴먼팩터(human factor)다. 이 개념은 생소하지만 어렵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나 직관 같은 것들이다. 저자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상품부터 안전과 직결되는 원자력발전소, 의료, 항공기 시스템까지 두루 살피며 진정 인간을 위한 기술이 어떠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저자가 내놓은 다양한 사례는 쉽고 익숙하며 가슴에 와 닿는다. 누군가 저자와 같은 휴먼팩터 연구자를 ‘기술 분야의 인류학자’라 불렀다는데, 인류학자처럼 갓 현장에서 길어 낸 듯 생생하다. 복사기는 누구나 한 번쯤 사용해 봤을 익숙한 전자제품이지만 머리 싸매는 이가 많다. 종이가 어떤 방향으로 나오는지, 신문을 복사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율로 확대 축소해야 할지…. 복사 버튼을 누르고 나니 원본 일부만 복사된다. 원본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 본다. 멀쩡한 종이를 한참 버리고 나서야 제대로 된 복사에 성공한다. 저자는 스캔 장치를 부착해 복사 결과를 미리 보여 주는 복사기를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인간 친화적일 뿐 아니라 종이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여 숲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

저자는 첨단 기술이 오히려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마법사 같은 개발자들이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이 평소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잊어버린 탓이라고 일갈한다. 2003년 출시된 BMW 시리즈는 전자계기반에 700∼800개 수치를 보여 줬다. 자동차 전문 잡지의 편집자들도 시동 거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10분이 걸렸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인간을 위한 기술은 일상적인 제품뿐 아니라 조직 시스템에도 필요하다. 저자가 예로 든 것은 안전 관련 대형 시스템이다. 1992년 런던 긴급 구조대는 인근 1500km²의 응급전화를 모두 자동으로 처리하는 컴퓨터 정보시스템으로 구조대를 파견했다. 전화량이 급증하면서 컴퓨터 알고리듬은 구조대가 늦게 도착한다는 전화를 새로운 응급 전화로 인식했다. 같은 곳에 구조대가 두 번 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은 과부하에 걸렸다. 구조대가 도착하는 데 3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 시스템 탓에 20∼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기술이 인간 통제를 벗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의 분석이 날카롭다. 과학은 전체를 작은 부분으로 해체해 각 부분을 고립시켜 연구하는 환원주의의 함정에 빠졌다. 지적 삶은 기술적·분석적 사고와 창조적·인문적 사고로 분열됐다. 사회학 심리학 같은 인간과학은 인간 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지만 자동차 컴퓨터를 사용하는 보통 인간의 정신 작용은 고려하지 않는다. 엔지니어링 응용수학 같은 기술 과학은 기계를 디자인할 때 이용자의 특성과 요구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 양편의 키클롭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족) 때문에 기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돼 버렸다. 이 전도된 가치는 기술 소외,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를 낳는다. 자신을 ‘기계치’로 자학했던 이들과 첨단 기계의 설계자들은 꼭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원제 ‘The Human Factor’(2003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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