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캉이 밀고 온 더벅머리 세월들

  • 입력 2007년 7월 1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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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개업 서울 소격동 화개이발관 국립민속박물관서 보존

56년 전 공사를 해서 밑으로 처진 데다, 쥐 잡던 고양이가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구멍이 뚫린 갈색 베니어합판 천장.

여기저기 해진 OK공업사의 이발 전용 가죽의자. 빛바랜 타일의 세면대. 가게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연탄난로. 크라운 수퍼드라이 맥주 광고 포스터.

수동식 이발기기(바리캉)와 일자형 면도칼. 파랑 노랑 하양의 3색 가위통. 모서리가 부서진 자그마한 수건장. 골드스타(GoldStar) 글자가 선명한 선풍기와 전화기. 한자 속해판(速解板)….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앞 화개이발관의 풍경이다. 1952년 영업을 시작한 이 이발관이 머지않아 문을 닫는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발관 내부 인테리어와 이발 도구를 근대 문화재로 보존해 전시하기로 했다. 오래된 이발관을 박물관에 옮겨 보존하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화개이발관은 1927년 문을 연 서울 용산구 청파1동 만리시장의 성우이용원을 빼고는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이발관 중 하나다.

1950, 60년대 이발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근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 포스터의 배경이 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의 주인은 1956년부터 이발관에서 일하다 1960년대 초 화개이발관을 인수해 운영해 온 최모(77) 씨. 그는 일요일을 제외하곤 5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발관에 출근했다.

화개이발관의 전성기는 1960, 70년대. 바로 앞에 경기고(지금의 정독도서관)가 있을 땐 몰려드는 학생들 때문에 이발사 8명이 일했다. 최 씨는 “그때는 장사가 잘돼 3년 일하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발관 자리엔 음식점이 들어선다. 최 씨는 “무척 서운하고 가슴 아프지만 여든이 다 됐으니 이제 일을 접으려 한다”며 “지금도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손님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발관 내부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으며 내부 이전은 이르면 8월 중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종수 유물과학과장은 “내부를 거의 손대지 않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데다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수건 한 장까지 모두 옮겨 놓을 생각”이라면서 “일단 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한 뒤 옛 모습대로 복원해 전시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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