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제3세계 슬럼 비참한 현실 고발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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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마이크 데이비스 지음·김정아 옮김/344쪽·1만5000원·돌베개

터키에는 ‘게체콘두’라는 말이 있다. ‘하룻밤 사이에 세운다’라는 뜻의 이 단어는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의 판자촌을 일컫는 고유명사다.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정부와의 37일간의 공방 끝에 결국 쓰레기 언덕 하나를 얻어내는 하층민의 인생. 터키 작가 라티페 테킨의 작품 ‘베르즈크리스틴: 쓰레기 언덕의 이야기’의 내용이다.

미국의 대표적 진보잡지 ‘네이션’의 필자인 저자가 몇 년에 걸쳐 조사한 제3세계 슬럼가의 현실은 예상보다 비참하고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에 따르면 기니 만 연안을 따라 급속하게 형성 중인 서아프리카 대도시 지역은 2020년에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가 300개에 이를 전망이며, 멕시코시티는 50년 안에 인구 5000만 명의 메트로폴리스가 된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제3세계의 도시인구는 급속도로 팽창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물, 하수시설 등 주거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 인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옛 무덤 유적이 거주지로 활용되는가 하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는 6000명이 화장실 하나를 공유하기도 한다.

슬럼의 극빈층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이용한 각종 불법의 횡행.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공무원들이 인근 상수도시설에서 공짜로 물을 퍼와 비싼 값에 파는가 하면 가나의 쿠마 시에서는 의회 의원들이 한 번 이용하는 데 기본급의 10%를 받는 화장실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저자가 분석한 원인 중 흥미로운 것은 슬럼가의 악순환의 요인으로 대형 비정부기구(NGO)들의 성과주의를 지목한 것. 저자는 인도의 인도레 프로젝트나 아라냐 재정주 프로젝트처럼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대형 NGO 프로젝트의 관련자들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상을 받지만 수혜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저자가 몇 년간 수집한 많은 자료와 함께 이뤄지는 제3세계 슬럼의 비참한 현실 및 비리의 고발과 냉철한 분석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하지만 결말에서 도시 슬럼가 주민들의 군사적 연대를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순식간에 저자의 시각에서 균형을 잃게 만든다. 원제 ‘Planet of slums’(2006년).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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