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s]엄숙주의 벗고 자유롭게…동네도서관의 변신

  • 입력 2007년 6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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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의 주부가 서너 살쯤 되는 아이에게 또박또박 큰 소리로 책을 읽어 준다.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이 “이 책 어떠니?” “재미없겠다”며 키득키득 웃는다. 엄마들이 대화를 나누며 차를 마시는 모습도 보인다.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작은 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기침이라도 하면 두리번두리번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도서관들과는 다르다.

누군가 아이스크림을 가져오자 환호성이 터졌다. ‘음식물 절대 금지’라는 도서관의 엄숙한 안내문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도서관이 바뀌고 있다.

어린이와 엄마를 위한 동네의 작은 도서관들이 늘고 있다. 나이 든 세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조용하고 답답한 도서관이 아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책을 읽는 놀이터 같은 곳이다.

○도서관은 놀이터

‘책 읽는…’은 겉모습부터 다르다. 초록색이 많이 사용된 외관은 동네 빵집을 연상시킨다. 1, 2층을 합해 60여 평의 아담한 공간은 낮은 책꽂이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등 아이들의 감성에 맞춰 디자인했다.

김소희 관장은 “아이들을 도서관에 보낸다고 책과 친해지는 것은 아니다”며 “엄마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고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진아(8) 양은 4세 때부터 어머니 정수정(36) 씨와함께 이곳을 이용했다. 진아는 “도서관은 책을 읽으면서 친구나 엄마와 함께 놀기도 하는 곳”이라며 “친구를 찾으러 도서관에 올 때도 많다”고 말했다.

2001년 개관한 이 도서관은 현재 900여 가족이 이용하고 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찾는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마더 구스’(영어동화) ‘크레파스’(영상그림책) ‘뚱딴지’(체험학습) ‘딱정벌레’(중증 장애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모임) 등 10가족 미만의 모임이 활성화돼 있다. 아이에서 시작해 엄마, 가족, 지역사회로 만남의 나이테가 커졌다.

○동네 도서관을 찾아라

경기 용인시 남촌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시다. 자신들의 키와 느낌에 맞게 도서관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꿈은 이루어졌다. 이 학교 도서관은 지난해 10월 리모델링을 거쳐 ‘밝은 책나루터’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도서관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바꿔 주는 ‘희망의 학교 도서관’ 프로젝트는 학생 200명 미만의 면 단위 학교를 대상으로 한다. 지금까지 50여 곳이 혜택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책 읽는 사회문화재단’의 김선영 간사는 “일본의 경우 도서관은 걸어서 10분 정도에 갈 수 있는 곳에 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낡은 구식 학교 도서관을 가고 싶은 도서관으로 바꾸거나 어린이 도서관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을 자주 찾으면 아이가 책과 친숙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o.kr/sml)에는 ‘전국의 작은 도서관 온라인 지도’가 있다. 약 2500개에 이르는 작은 도서관의 전화번호와 주소, 이용시간을 알 수 있다.

○도서관은 살아 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숲 속 작은 도서관’은 세계 각국의 팝업 북으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이진아 도서관’은 예쁜 공간에 문화 프로그램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꿈나무 어린이 도서실’(서울 은평구 대조동)은 파출소를 리모델링한 어린이 전문 도서관이다.

어린이 도서관들은 영어, 독서와 글쓰기, 영화 관람, 도서관에서 하룻밤 자기, 연극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아이와 도서관의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

가까운 곳에 마땅한 어린이 도서관이 없다면 시립이나 구립 공공도서관의 어린이 열람실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은 온돌로 만든 유아열람실과 어린이 소극장, 자연체험 학습장을 갖추고 있다.

출산을 준비 중이거나 갓난아기를 키우는 여성은 ‘북 스타트(book start)’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자. 영국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는 취지다. 보건소와 도서관 등 전국 42개 공간에서 아이와 엄마에게 필요한 책을 무료로 나눠 주고 있다.

내 아이를 ‘도서관 키즈(kids)’로 만드는 길은 의외로 멀지 않을 수 있다. 진아 어머니의 충고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지켜보면서 곁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집중하며 읽기 시작한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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