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이모 열전’]<상>“우리집 ‘이모’ 없으면 안돼요”

  • 입력 2007년 6월 22일 03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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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姨母)란 어머니의 자매로서 촌수를 따지면 3촌이지만 엄마와는 다른 편안한 존재다. ‘이모집’이란 식당 간판에는 고객에게 푸근한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요즘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 촌수를 따지기 힘든 신이모들이 등장하고 있다. 다름 아닌 가사도우미들이다. 사회적 수요가 많아지면서 바야흐로 전문직 대접을 받고 있는 ①가사도우미, 신이모열전과 ②도우미를 이모로 만드는 노하우를 상하로 나눠 싣는다. 》

초등학교 4학년 자영(가명)은 직장 일로 바쁜 엄마(38·전문직)를 대신해 3년째 ‘이모’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이모는 학급 자모회에 가거나 급식당번을 하면서 엄마의 빈 자리를 메워 준다. 자영의 이모는 다름 아닌 가사도우미다.

‘이모’는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학교 측 전달 사항을 메모하고 학부모들과 아이들 공부에 관해 대화도 나누는 제2의 엄마다.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그를 자영의 진짜 이모인 줄 안다.

자영 엄마 김 씨는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시간이 절대 부족한데 마음놓고 아이를 맡길 분을 만났으니 내 인생의 ‘쾌거’라고 생각할 정도”라며 “온 가족이 깍듯하게 ‘이모’로 부르도록 했다”고 말했다.

피아노학원을 15년째 운영하는 박은영(가명·43) 씨도 “주변에서 맞벌이 부모 대신 아이를 돌봐주는 아줌마 또는 할머니가 언제부턴가 이모, 이모할머니로 불리고 있더라”면서 “처음엔 진짜 친척인 줄 알았는데 도우미 아주머니를 격상해 부른 말”이라고 전했다.

가사도우미가 ‘이모’로 진화하고 있다. 여전히 가사도우미에 그치는 사람도 많지만 온 가족이 도우미에게 기대어 생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정부’라는 직업이 가족과 횡적 관계로 연결돼 전문직으로 부상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맞벌이 딸을 대신해 외손녀를 돌보고 있는 임모(63·여) 씨는 최근 너무 힘들어 육아도우미를 들였다. 평소 ‘돈 받고 애를 봐주는 도우미들이 그렇고 그렇겠지’라며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임 씨는 요즘 매우 만족해 한다.

시간에 맞춰 아이에게 간식도 해 먹이며 능수능란하게 아이를 다루는 모습에 내심 놀랐다. 임 씨는 “요즘 가정부들은 살림과 육아에 노하우가 많으며 매사를 당당히 처리해 마음에 든다”면서 “이들은 가사를 전문직종으로 여기는 듯하다”고 말했다. 임 씨 모녀 역시 도우미를 이모라고 부르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아온 삶이 ‘신(新)이모’들과 ‘한판 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주부 함모(37·회계사) 씨.

10여 년 전 출산 직후 바로 외국 유학을 갔던 함 씨는 가사나 육아 도우미를 써서 돈을 쓰더라도 이른 시간에 공부를 마치는 게 현명한 절약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유학 생활을 했다. 이후 귀국해서 국내에서 직장을 잡고 살아오면서 여러 명의 도우미를 만났다. 도우미 덕분에 공부도 하고 직장도 다니며 아이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편안히 잘 지냈지만 도우미 때문에 겪은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함 씨는 “가정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24시간 함께하는 타인과의 생활인데 100% 조화를 이룰 수 있었겠느냐”면서 “가사도우미도 돈을 받고 일하는 직업인데 일부 도우미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억지 주장을 펴기도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에는 도우미들이 학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살림 노하우가 많고 무엇보다 프로 정신까지 있다”면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지만 정말 고마운 가족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이모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모’란 호칭의 남발(?)을 호칭 거품이라는 세태와 연관짓는 시각도 있다. 겉치레와 외면을 지나치게 강조해 누구에게나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려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진짜 이모의 내면적인 친밀함을 경험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김경애 사외기자 ellesh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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