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畵로 고발한 일제 통치”

  • 입력 2007년 6월 20일 03시 08분


코멘트
1930년대 민간 경제 파탄의 주범이었던 전당포 모습을 담은 감로도. 사진 제공 장희정 연구원
1930년대 민간 경제 파탄의 주범이었던 전당포 모습을 담은 감로도. 사진 제공 장희정 연구원
장희정 씨 1939년 제작 흥천사 감로도 새 해석

전차, 자전거가 다니는 도심의 교차로, 가로변에 늘어선 전신주, 코끼리쇼가 진행되는 서커스장, 신식 법복을 갖춰 입은 법관들이 등장하는 재판….

20세기 초 근대기 생활 모습을 담은 그림은 뜻밖에도 일반 풍속화가 아니라 ‘감로도(甘露圖)’라는 불화 중 일부다. 중생 교화를 목적으로 한 감로도는 현실의 희로애락을 다양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

그중에서도 1939년 제작된 서울 성북구 돈암동 흥천사의 감로도에는 일제강점기의 사회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광복 직후 그림이 친일작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오해 때문에 그림 위에 흰색을 덧칠하거나 종이를 덧대는 등 수난을 겪었다. 제대로 된 연구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장희정 대청호미술관 학예사가 올 3월부터 정재문화재연구소와 합동으로 적외선 촬영을 이용해 그림을 상세 분석한 결과 새로운 의견이 제시됐다. 이 불화들은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다.

장 학예사가 주목한 것은 감로도의 전쟁 장면들.

감로도는 일반적으로 전쟁 장면을 하나 정도 넣지만 흥천사 감로도에는 모두 5개나 된다. 내용도 폭격과 같은 전쟁의 참혹함과 잔혹상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또 당시 조선인에게 원성이 높았던 일본식 재판이나 총독부 정경, 민간 경제 파탄의 주범이었던 전당포 모습 등 일제 강점 후 나타난 부정적 사회상들을 담고 있다. 그림을 그린 승려 남산병문이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주의 계열 인사로 분류됐다는 점도 이 그림에 담긴 비판 의식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장 학예사는 “일제강점기의 모습을 정확하게 투영했으며 시대 비판이라는 주제가 강도 높게 전달된 그림”이라며 “독특한 화면 구성 방식이나 19세기 말 서양화법의 수용 등 불교미술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화보]1930년대 모습을 담은 감로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