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상을 꿰뚫는건 뿌리뽑힌 지식인…‘다른 곳을 사유하자’

  • 입력 2007년 6월 9일 03시 03분


코멘트
발터 베냐민, 지크프리트 크라카워, 해나 아렌트, 피에르 부르디외, 게오르크 지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 제공 푸른숲
발터 베냐민, 지크프리트 크라카워, 해나 아렌트, 피에르 부르디외, 게오르크 지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 제공 푸른숲
◇ 다른 곳을 사유하자/니콜 라피에르 지음·이세진 옮김/340쪽·1만4000원·푸른숲

조국에서 추방당해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파리아), 스스로 주변인을 자처하며 경계를 넘는 유목민(노마드), 뜨내기 노동자들의 현장에 뛰어든 사람(호보)….

이들의 공통점은 자의든 타의든, 본디 자리를 떠나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다른 곳에서 본디 자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인 저자는 이들을 “이방인으로서의 지식인”이라 부르고 이들이야말로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기 자리를 떠나 방황하고 경계를 넘어섰기에 기존 사회의 통제에서 자유로우며, 그래서 자기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려는 사회를 뒤집어엎는 힘이 생긴다는 것.

이 책은 학문과 학문의 소통, 곧 학제 간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사회, 계층, 국가, 문화 사이의 이질성을 고찰한 서구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다뤘다. 저자는 이들의 궤적을 통행(분리된 이편과 저편을 이어 주는 길을 만든다) 이주(이방인으로서 온 세상을 유배지로 만든다) 이동(사회적 계급을 넘어선다) 이산(고향을 잃어 민족의 틀을 뛰어넘는다) 혼합(다른 문화를 섞는다) 전환(새로운 지식을 만든다)의 여섯 장으로 나눠 좇는다.

여기서 ‘떠남’은 사유만이 아니라 실제 ‘몸의 이동’을 말한다. 터전을 떠나지 않고도 다른 곳을 사유할 순 있지만 사회의 규범, 권위의 중추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야만 그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해나 아렌트, 발터 베냐민, 피에르 부르디외처럼 널리 알려진 지식인들 말고도 수많은 이방인이 우리 앞에 선다. 그중 지크프리트 크라카워는 빌헬름 제국의 몰락을 경험한 유대인이자 반항적 지식인. 학파도 당파도 없었던 그는 저널리즘과 사회학, 소설과 역사를 넘나들며 ‘일상의 미학’으로 사회 변화를 드러내는 기호를 포착했다. 그런 그가 “자신만의 장소라고 지정된 곳에서 실제로 빠져나와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한없이 달릴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국제특급열차를 특히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사상뿐 아니라 몸도 안주와 정착을 거부한 셈이다.

저자는 픽션과 논픽션, 저자 자신의 이야기와 지식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교차시킨다. 이 책의 텍스트 자체가 경계의 넘나듦을 몸소 실천하는 듯하다. “세계가 그토록 광대한 것은 우리 모두 그 안에서 흩어지기 위함이니.” 책 첫머리에 인용한 괴테의 말이 ‘떠돌이’ 지식인들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 원제 ‘PENSONS AILLEURS’(2004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