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삶’을 전시합니다… 젊은 작가 6명 ‘딜레마의 뿔’展

  • 입력 2007년 4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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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다 법대로 간 과 동기도 있었고, 그림을 접고 만화를 택한 선배도 있었다. 진훈(37) 씨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림만으로 먹고살 순 없어, 입시학원 강사로도 일한다. 진 씨에게 자화상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예상 성적표 사이의 간극은 한없이 크지만,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5월 31일까지 열리는 ‘딜레마의 뿔’전에서 진 씨를 비롯해 젊은 작가 6명의 고민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화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게 아니다. 미술에 입문했던 유년기, 중고교 입시를 거쳐 미대를 다니던 시절, 예술과 생활 사이에서 분투하는 현재까지 살아 온 자취를, 그들이 모아 온 사물을 통해 보여 준다.

진 씨의 전시장에는 로봇 태권V를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부터 중고교 때 상으로 받아 온 메달, ‘루카치 미학연구’ 등 이론서까지 살아 온 과정의 증거물이 빼곡하다.

공동 작업을 자주 하는 박미나(34) 씨와 사사(예명·35) 씨의 전시장은 창고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받은 미래과학그리기 최우수상 상장, 미술학원에서 그린 아그리파 데생, 가수 조용필이 노래하는 사진…. 작가들은 영수증도 모았다. 한쪽 벽에는 이윤상 군 유괴사건, 임수경 방북 등 한국 사회의 이슈를 기록한 신문 스크랩이 붙어 있다. 당시 뜨겁던 의제가 담긴 기사들은 이들이 사회와 미술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를 보여 준다.

김월식(39) 씨는 개인전에 내놓았던 작품에 축하 화분까지 모아 보트에 담은 ‘노아의 방주’를 선보였다. 그 옆에는 작가가 ‘플랫폼’이라고 부르는 둥근 마룻바닥이 있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 플랫폼은 많은 사람이 만나고 대화하는 공간이다. ‘플랫폼’에는 미술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소통과 교류에서 나온다고 믿는 철학이 담겨 있다.

류현미(39) 씨는 부서진 빨래판이나 부러진 상을 선보였다. 스스로를 ‘무명씨’로 부르는 류 씨. 제대로 이름 붙이기 어려운 사물들도 작품이 될 수 있다며 ‘무명씨’인 자신이 의미 있는 예술가로 조명 받을 수 있음을 기대한다. 동아리방을 재현한 민중미술가 배인석(39) 씨의 전시장에는 동아리 그림모음집이나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 제작 중인 벽화까지 현장미술에 대한 고민을 내비친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작가의 인생이, 그 인생이 몸담았던 현대사가, 그들이 부닥친 딜레마가 보인다. 류 씨의 말은 이번 전시의 의의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 나온 것들이 소진되지 않고 재현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과거와 호흡하는 현재 덕분이다. 희망은 그 지점에서 생긴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02-2020-2055

글=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사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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