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아르헤리치 DVD 출시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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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같은 터치, 환상적 테크닉… 피아노의 여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아담한 소도시 ‘라 로크 당테롱’. 이 작은 도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81년부터 시작된 피아노 페스티벌 때문이다. 2005년에 열렸던 25회 페스티벌의 주인공은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66)였다.

최근 DVD로 출시된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하는 피아노의 저녁’(TDK)엔 플로랑 성 야외무대에서 펼쳐졌던 이 음악회의 실황이 담겨 있다. 패기 넘치는 프랑스 형제 연주자 르노 카퓌송(바이올린), 고티에 카퓌송(첼로)의 연주와 함께 아르헤리치의 원숙미가 만들어 내는 베토벤 ‘3중 협주곡’은 인상적이다. 또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아르헤리치의 모습은 여전히 강철 같은 터치와 경이로운 테크닉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13년 만의 내한공연을 했던 아르헤리치는 관객들의 뜨거운 앙코르 요청에도 독주는 선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1980년대 이래 무대에서 독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화려한 독주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벗어던진 뒤 오히려 더 멋진 ‘여황제’로 군림하고 있다. 전 세계에선 그녀의 이름을 딴 음악제가 열리고 있다. 스위스 베르비에, 루가노, 일본의 벳푸, 독일의 뮌헨…. ‘아르헤리치와 친구들’엔 세계 최고 스타급 솔리스트들이 늘 함께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2003년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10주년 기념 콘서트. 클래식음악계의 ‘별 중의 별’들이 모여 ‘몬스터 콘서트’로 불린다. ‘피아노 엑스트라바간자’(소니BMG)라는 이름이 붙은 당시 연주실황 DVD를 보면 절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 예브게니 키신, 제임스 레바인, 미하일 플레트네프,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에마누엘 액스, 랑랑 등이 한꺼번에 등장해 8대의 피아노를 치는가 하면, 르노 카퓌송, 사라 장(장영주), 기돈 크레머, 바딤 레핀,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 미샤 마이스키, 유리 바슈메트 등이 현악 앙상블을 이뤄 ‘해피 버스데이’를 하이든, 베토벤, 탱고풍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장면은 폭소를 자아낸다. 진실로 ‘즐기는’ 음악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콘서트다.

아르헤리치는 13년 전 기돈 크레머와의 내한공연에서 연주 도중 피아노의 강철 현을 끊어버린 ‘전설’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강렬한 터치와 경이로운 테크닉만이 그녀를 여제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재능 있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모’의 역할을 해 왔다.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강한 개성을 보여 준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가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그녀는 방송 카메라에 대고 “저 사람은 천재란 말이오”라고 소리친 뒤 심사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EMI를 설득해 한국인 피아니스트 임동혁 등 4명의 신예 피아니스트의 음반 발매를 주선해 주기도 했다.

국내에도 최근 ‘신수정과 친구들’ ‘강동석과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실내악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연주자나 관객들이나 워낙 독주만 선호하는 탓에 실내악은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벳푸에서 대학오케스트라와도 스스럼없이 무대에 서는 아르헤리치처럼, 국내에서도 거물급 연주자가 앞장서 유망 신예들과 함께 앙상블을 이루는 장면을 자주 보고 싶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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