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책값 9800원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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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이 두어 순배 돌았을 때 화제는 단연 책값이었다. 최근 출간된 200만 원짜리 문화재도록에 관해서였다.

“고급스러운 도록을 만들기 위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것은 인정하지만 200만 원은 과하다고 본다.”

“출판사가 200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200만 원으로 매기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책값은 시장을 반영하는 것이니 가격에 대한 독자들의 심리도 반영해 값을 좀 내렸어야 했다.”

“비싼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 200만 원이 그리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

출판계 미술계 사람들과 함께 ‘200만 원와 실제 가치’에 대해 나름대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술잔이 몇 순배 더 돌 때까지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애초부터 결론이 날 일도 아니었다.

책 만드는 사람들에게 책값을 매기는 작업은 마음이 설레면서도 고민스러운 일이다. 책값은 대개 책을 거의 완성했을 때 책정한다. 무사히 책 한 권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게 될 시점이 임박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값을 정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총제작비를 계산해 봐야 하고 몇 부 정도가 팔릴 것인지를 예상해 손익분기점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자들의 심리적 저항을 가져오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정해야 한다. 독자들에게 비싸다는 느낌을 주어선 곤란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형성된 교양서 대중서의 평균 가격은 1만∼1만5000원.

이번 주엔 9800원짜리 책이 많이 나왔다. 출판사 측은 분명 1만 원으로 매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9000원대라는 심리적 안도감을 주기 위해 200원을 에누리한 것이다. 100원을 깎아 900원 단위로 가격을 매긴 책들도 있다. 이런 전략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달 초 1만2800원짜리 책을 낸 한 출판사 대표의 말.

“손익분기점을 따져 보니 최소한 1만3000원은 되어야 했는데 200원을 내렸다. 그랬더니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분명 효과가 있다.”

‘200원 에누리’의 행복이라고 할까.

물론 고가 전략도 있다. 고가의 책은 대부분 고급스러운 장정과 편집으로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500권, 1000권으로 부수를 한정해 여기에 일련번호를 매기는 경우도 있다. 마치 사진이나 판화 작품처럼. 먼 훗날 이 책이 귀해져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면 비싼 값에 거래될 수도 있다.

서점에 가면 책값이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물론 실제 가치에 비해 비싼 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좋은’ 책은 그 가격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 아닐까.

그날, 책값 얘기도 하고 미술 얘기도 하고 즐겁고 유익한 술자리였다. 그렇지만 술값은 책값보다 훨씬 더 비쌌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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