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달 22일 함 신부를 평양교구장 서리 고문으로 임명했다. 함 신부에게 북한 주민 지원과 선교 자문을 맡긴 것. 특히 그는 북한 주민을 위한 의료지원 사업에 힘쓸 생각이다.
함 신부는 26일 북한을 방문한다. 의약품 지원 사업의 얼개를 짜기 위한 첫걸음이다. 교황청 산하 구호단체인 국제카리타스의 각국 지부 관계자들과 함께 가톨릭이 북한 주민 돕기에 힘을 모을 방안을 논의한다.
평양교구장 서리 고문 자격으로는 처음 북한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10년간 북한을 25차례나 찾으며 북한의 결핵환자를 돕는 데 앞장서 왔다. 대북 지원단체인 유진벨 재단 이사와 국제카리타스의 대북지원사업 운영위원회 의장이기도 하다.
“정 추기경님이 북한에 갈 수 없으니까 저를 눈과 귀와 같은 대리인으로 내세우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길을 닦고 준비하는 역할을 제게 맡기신 거죠.”
함 신부는 “특히 어린이와 여성, 노인을 위한 의약품 지원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또 “병원 건물의 설립보다는 의약품 지원 사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병원 시설이 있어도 환자를 치료할 약이 없어 아픈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
자주 만나고 대화해야 북한 주민이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게 함 신부의 지론. 일회성 동정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45곳의 북한 병원을 찾아 병원장과 환자들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우리’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 주민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나 몰라라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우리’ 한국인의 장점은 마음으로 통한다는 겁니다. ‘우리’ 정서는 잘났건 못났건 앞집 옆집 일에 관심을 갖고 잔치를 해도, 상을 치러도 같이 준비하고 나누지 않습니까.” 그는 “북한 주민도 우리 가족이라 생각하고, 우리 가족이 병을 앓고 있다고 가슴 아파하면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어서도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며 충북 괴산에 묏자리까지 봐 뒀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함 신부. 한국에 온 뒤 오로지 ‘함제도’라는 이름으로만 불렸으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애도가로 ‘보리밭’을 불렀다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신부. 그는 “‘우리’ 남북이 사상은 다르지만 같은 핏줄이기에 본질은 같다”며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을 위한 작은 관심을 거듭 호소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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