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영아]‘제암리 만행 은폐’ 밝힌 어느 日人의 용기

  • 입력 2007년 3월 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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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쓰노미야 다로(宇都宮太郞·1861∼1922) 전 조선군사령관의 일기 등 사료 7200여 점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때맞춰 3·1절을 맞은 한국에서도 크게 보도됐다. 양민 30여 명이 학살된 제암리 사건의 은폐 경위를 당사자가 일기를 통해 밝혔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남았다. 무엇보다 공개된 진실이 충격적이라는 1차적인 관심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관계자들이 사료를 서둘러 통째로 밝힌 동기와 사료를 남겨 후대에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우쓰노미야 본인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는 음미해 볼 만한 대목이었다.

우쓰노미야 본인이 사후 공개를 원해 정리한 사료는 장남 도쿠마(得馬·1906∼2000) 참의원 의원을 거쳐 손자 대에서야 빛을 보게 됐다. 5년 전 사료를 넘겨받은 뒤 정리해 온 기라 요시에(吉良芳惠) 니혼조시(日本女子)대 교수는 “자료 발굴과 공개가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당초 10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한국과 아시아의 여러분께 하루라도 빨리 내용을 알리고 싶어 정리와 편찬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고 그는 지난달 28일 기자에게 설명했다.

기라 교수는 “우쓰노미야가 식민지 무력 지배에 비판적이었고 중국의 신해혁명을 지원하는 등 나름의 독특한 아시아관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버지의 이런 생각 때문인지 장남인 도쿠마 의원은 일본의 군축을 주장하고 대(對)아시아 외교에도 적극적이었다. 자민당 내에서 ‘좌파’로 몰릴 정도였다.

조선독립운동을 다룬 일기 뒷부분은 채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3·1절에 맞춰 보도하고 싶다”는 아사히신문 기자의 요청에 따라 미리 공개했다는 얘기도 마음을 울렸다.

역사 왜곡에 앞장서는 일부 일본인에게 분노하는 일 못지않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이웃과 화해하고 미래를 열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일본인의 ‘선의’에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자민당의 일부 의원이 ‘군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군의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견해를 밝히라고 정부에 요구할 것이라는 소식이 1일 알려졌다. “증거 자료가 없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군색한 논리다.

우쓰노미야가 더 오래 살아서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실을 담은 일기를 남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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