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섹스와 공포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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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귀를 가진 사티로스(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에게 몸을 굽히는 여제관. 폼페이에서 옮겨 온 모자이크 벽화로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인물들의 눈은 성애를 나누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사진 제공 문학과지성사
뾰족한 귀를 가진 사티로스(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에게 몸을 굽히는 여제관. 폼페이에서 옮겨 온 모자이크 벽화로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인물들의 눈은 성애를 나누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사진 제공 문학과지성사
◇섹스와 공포/파스칼 키냐르 지음·송의경 옮김/356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쾌락에는 궤멸하는 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은 가슴을 저미는 타인에 대한 연민이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순간에 대한 느낌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저자의 어떤 책이 출간되든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는 파스칼 키냐르. 공쿠르상 수상작인 ‘떠도는 그림자들’과 ‘은밀한 생’ 등이 번역돼 국내에서도 키냐르 마니아층이 꽤 두껍다.

‘섹스와 공포’는 키냐르가 묵직한 철학적 주제를 줄기로 삼아 쓴 에세이집이다. 주제는 ‘성(性)의 관점에서 쓰는 인류 문명사’. 성을 억압하는 청교도주의가 중세에 발현됐다는 그간의 정설과 달리, 고대 로마시대에서 그 뿌리를 찾은 이 책은 프랑스에서 화제가 됐다. 키냐르가 삼는 근거는 고대 로마 시대의 벽화다. “나는 폼페이의 에로틱한 벽화들에 그려진 인물들이 하나같이 수줍어하고 심각하다는 데 놀랐다. 나는 훨씬 더 즐겁고, 훨씬 더 디오니소스적인 무엇을 기대했었다.…곁눈질하는 그(녀)들의 시선에서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수줍음과 두려움이 서린 여성들의 모습이 담긴 벽화 하나하나를 분석하면서 키냐르는, 성이 공포와 저주로 변질되기 시작한 때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제국으로서의 로마를 재정비하던 때(기원전 18년∼기원후 14년)라고 말한다. 이 시기의 로마인들은 엄격한 법에 억압되기 시작하면서 성도 공포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출생은 성교의 결말이며, 소멸해가는 쾌락’이라는, 섹스와 죽음을 동일시하는 철학적 사유가 덧입혀지면서, 현대에 이르러 섹스와 공포는 한몸이 된다.

술술 읽히기보다는 끈기 있게 한줄 한줄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 한줄 한줄이 모두 깊이 있는 사색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서 공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원제 ‘Le Sexe et L'effroi’(1994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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