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 “昌, 연예인 이용할 줄 몰라 두번 다 졌다”

  • 입력 2006년 12월 27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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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정한용 씨는 “선거에서 연예인의 파워는 무서우리만큼 대단하다”고 역설했다.
탤런트 정한용 씨는 “선거에서 연예인의 파워는 무서우리만큼 대단하다”고 역설했다.
[기획취재] ‘연예인 권력’ 4부-탤런트 정한용의 토로

“대선, 연예인 중요성 간과하면 필패”

탤런트 정한용 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26일 KBS를 찾았다. 정 씨는 1992년 대선 때 김대중(DJ) 후보 캠프에서 맹활약했다. 하지만 DJ는 낙선했고,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95년 DJ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캠프에 참여해달라는 거듭된 요청을 받고 귀국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서울 구로갑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1997년 대선 때는 총재 특별보좌역으로 유세에 앞장서서 DJ 당선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재선에 실패한 뒤 정치일선을 떠나 방송에 복귀했다. 그는 정계에 진출한 후 각각 두 번의 대선과 총선을 치렀고 모두 한 번씩 이겼다. 정치권력의 달콤함과 실패의 쓴 잔을 동시에 맛본 셈이다.

“이회창·한나라당은 선거에 미숙”

KBS 본관 1층에서 정씨와 간단히 수인사를 나눈 뒤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에게 ‘연예인 권력’에 대한 취재 의도를 설명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선거에서 연예인의 파워는 무서우리만큼 대단하다”며 정치 얘기로 입을 열었다.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캠프는 연예인의 중요성을 간과했어요. 반면 DJ 캠프에서는 정말 많은 연예인들이 참여해 도왔어요. 인기 그룹 ‘DJ. DOC’가 로고송을 만들었고…. 모두 표를 얻는데 상당히 큰 기여를 했죠.”

그는 2002년 대선도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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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선거 캠페인’을 공부했어요. 선거는 캠페인을 얼마나 잘하느냐로 결판이 납니다. 그런데 2002년 대선을 보면서 ‘한나라당은 정말 선거에 미숙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무현 캠프에서는 명계남·문성근 씨가 대중연설 같은 걸 굉장히 잘했죠. ‘만 명, 오천 명씩 모아놓고 연설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고 하는데 그들이 말을 옮기기 시작하면 판 전체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정치인이 연예인을 선거에 동원하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사람을 모아 주목도를 높이고 표를 끌어 모으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일차적으로 연예인이 갖고 있는 대중에 대한 호소력을 전면에 내세워 사람들을 모으는 거죠. 궁극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그 정치인을 좋아하니까 나도 (그 정치인을) 지지하겠다’는 대중 심리를 이용해 표를 얻으려는 전략이죠.”

“정치인 지원해도 별 이익은 없다. 잘못했다간 치명타만 입을 뿐”

정 씨는 경험자의 입장에서 유세장에 나서는 연예인에 대한 우려도 표시했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정치인을 지원할 경우 ‘인기가 크게 올라간다거나 하다못해 방송국에서 마음대로 좋은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하고 막연한 기대를 해요. 그런데 자신이 지원한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큰 이익은 없어요. 반면 떨어질 경우에는 치명타를 입어요. 개그맨 심현섭 씨는 이회창 후보 따라다니다가 개그콘서트의 ‘슈퍼스타’에서 한순간에 추락했잖아요. 또 정치인들은 ‘선거 끝나면 보답하겠다’며 유혹하는데, 보답은 무슨 보답입니까. 내가 정치판에서 쫓겨났는데…. 후배들한테 굉장히 미안하고 부끄러워요.”

그는 앞으로는 유명 연예인이 선거에 동원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요즘은 유명 연예인을 부르는 데는 돈이 많이 들지요. 그들은 가만히 있어도 수십 억, 수백 억 버는데 돈 몇 푼 준다고 쉽게 나서겠어요. 나갔다가 인기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러다보니 덜 유명하거나 형편이 좀 어려운 연예인들이 나가는 경우가 많죠. 차츰 정치판에 연예인을 동원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그는 정치인이 제공하는 ‘액수’에 대해서는 “자기들끼리 뒤로 거래를 하니까 얼마가 오고가는지는 정확히 모른다”면서도 “돈을 많이 주는 경우도 있고…”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우리 국민은 연예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거 싫어해…”

화제는 ‘폴리테이너’(politainer, 연예인 출신 정치인)로 넘어갔다. 정 씨는 연예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갖기 때문에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긴 한숨을 쉬었다.

“우리나라는 정치에 관심이 아예 없거나 아주 많은 국민,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를 혐오하는 국민 등 다양한 성향의 국민으로 이뤄져 있어요. 그런데 한가지 공통점은 연예인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누구나 싫어한다는 겁니다. ‘얼굴 팔아서 정치하려고 그랬느냐’는 인식이 강하죠. 그러니 연예인들이 일부러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해요. 안 가져야 인기가 올라가거든요. 정치적으로 문외한이 되는 거죠.”

그는 자신의 경험도 곁들였다.

“옛날에는 지역을 불문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특별히 열광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런데 정계에 입문해 DJ를 수행하다 보니까 호남 쪽에서는 굉장히 사랑을 받고, 영남지방에서는 그렇게 싫어할 수가 없어요. 정치권을 떠난 지금은 ‘잘 돌아왔다’며 좋아해 주세요. 이 같은 국민의 반응을 생각하면 슬프고 씁쓸해요.”

‘정치에 관심을 안 가져야 인기가 올라간다?’ 실제 정 씨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후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그는 왜 정계에 입문했을까.

“어느 날 집으로 임채정 의원(현 국회의정)과 원혜영 의원이 찾아와서 DJ 캠프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내가 사양했더니 ‘다른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도 접촉해봤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했다더군요. 당시 YS 캠프에는 이덕화·박규채 씨 등 상당히 많은 연예인들이 있었어요. 반면 DJ쪽은 한 명도 없더군요. 제1야당 후본데 안 됐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참여하게 됐죠.”

그는 “1992년 대선 때 방송 포기하고 캠프에 뛰어들었다. 라디오·TV 연설을 혼자서 다 소화해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정계에 진출할 뜻이 있는 후배 연예인들에게 “‘돈 벌려면 사업하면 되고 이름 날리려면 배우가 더 낫다. 정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적으로 할 게 있다면 그때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스타는 상업적 이용을 위해 언론이 만들어낸 사람일 뿐”

정 씨는 ‘스타 권력’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는 ‘스타’란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언론이 만들어낸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스타 자체가 그 사람은 아니에요. 스타의 실제 모습과 언론에 나온 모습은 다르다는 말이죠. 실례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으로 바뀌곤 해요. 그러다 얼마 뒤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돼 인기가 떨어지고…. 스타에 덧 씌어진 ‘환상’을 거둬내고 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또 스타마케팅의 폐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유명 연예인이 출연한 광고가 국민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광고주들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기 위해 유명 연예인을 선호하지만 실제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배우 자체가 아니라 배우에게 일정한 역할을 시켜서 만들어진 완성품(광고)이다. ‘이미지 덩어리(광고)’에 연예인은 단순히 도구로 사용될 뿐”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스타의 권력화’도 경계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과거 경제·문화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에 종속돼 있을 때 그들 문화를 ‘침략적·상업적·환각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흉내를 많이 냈고 답습했다”며 “지금은 그걸 더욱 발전시켜 ‘한류’붐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할리우드는 스타를 내세워 전 세계를 문화적으로 지배하려 했어요. 이제는 우리가 스타 권력을 앞세워 아시아를 지배하려 하고 있습니다. 실상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문화 메이저국가’가 돼 있죠.”

그러나 정 씨는 할리우드와 우리의 문화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가 내세우는 스타는 말 그대로 ‘별’이죠. 신비롭고 초인적인 동경의 대상이죠. 그러나 그건 ‘수출용’ 문화예요. 대내적 문화는 그렇지 않아요. 유럽도 마찬가진데, 대내적 문화의 배우들을 보면 잘 생긴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들은 스타가 아니고 그냥 ‘배우’죠. 먼 동경의 대상도 필요하지만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친구 같은 배우도 필요합니다. 우리도 대내적인 문화는 따로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요. 앞으로 그 기반을 깔고 채워나가야 합니다.”

“연예인은 동질의 집단이 아니다”

정 씨는 10대와 젊은 연예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국은 공부를 못해야 스타가 된대요. 공부 잘하는 애들이 없어요. 문제가 심각하죠. 문제아가 연예계에 데뷔해 성공할 경우 그를 보고 문제아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건 괜찮겠죠. 그런데 많은 연예인들이 문제아 출신이에요. 학교 다닐 때 나쁜 짓이나 하고 무식하기가 한이 없는 애들이 인기를 끄는 추세가 이어져선 안 되죠.”

그러나 그는 “연예인은 동질의 집단이 아니다”며 “한두 명의 잘못을 전체 연예인으로 비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리 사회에는 의사나 검사, 변호사처럼 동질의 집단이 있어요. 의사는 의대를 나와야 하고 자격증이 있어야 하죠. 검사·변호사는 사법고시를 봐야 하죠. 그런데 연예인은 무슨 자격증 같은 게 있나요. 없잖아요. 의사 중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의사 전체를 이상하게 보진 않잖아요. 그런데 연예인은 누구 한 명이 이상한 짓을 하면 연예인 전체가 다 그렇다고 매도해요. 연예인을 집단화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정 씨는 인터뷰 말미에 ‘연예인 권력’에 대해 묻자 “영원한 스타도 영원한 권력도 없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고 소멸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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