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학-율곡학 5년 논쟁… 조선 성리학 연구에 새 장

  • 입력 2006년 12월 19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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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과 율곡학은 주자학인가.

어찌 보면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이 질문을 둘러싸고 한국 철학계에서 5년여에 걸쳐 학술논쟁이 펼쳐졌다면 믿을 수 있을까. 동양철학 학술지인 ‘오늘의 동양사상’ 15호는 그동안 주자학의 적통 내지 아류로 인식돼 온 퇴계학과 율곡학의 고정관념에 대한 논쟁을 일단락 짓는 글을 실었다. 김기주(계명대 강사) 박사가 정리한 이 글은 9명의 소장 학자가 참여한 16편의 쟁론을 소개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정리했다.

이 논쟁은 이상익 영산대 교수가 2000년 정원재 현 서울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지각설에 입각한 이이 철학의 해석’의 내용을 비판하고 이를 반박하는 정 교수의 글이 ‘오늘의 동양사상’에 나란히 실리면서 시작됐다.

정 교수의 논문은 율곡 이이의 학문에 나타난 지각설(知覺說)에 근거해 율곡의 학문이 주자학보다는 호상학(호남학)을 계승한다고 주장했다. 호상학은 남송시대 후난(湖南) 성 악록서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호안국·호인·호굉 부자가 전개한 학설로 성선설 성악설을 부인하고 이(理)와 기(氣)를 본체와 현상으로 이원화했다. 또 마음이 사물에 이미 감촉된 상태인 이발(已發)을 중시해 마음이 사물에 감촉되지 않은 미발(未發)까지 포괄했던 주자학과 차별된다.

그러나 이상익 교수는 율곡학이 주자학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지만 △성선설에 대립하지 않았고 △이와 기를 본체와 현상으로 이원화하지 않았고 △이발과 미발을 함께 중시했다는 점에서 호상학과 계승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이 논쟁은 다른 학자들의 참여로 확대되다 “이이가 퇴계 이황보다 더 주자에 가깝다”는 홍원식 계명대 교수의 발표문을 기점으로 퇴계학 성격논쟁으로 발전했다. 홍 교수는 퇴계학이 자연과 인간사회의 보편 질서로서 이(理) 중심의 주자학을 도덕인식적인 심(心) 중심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손영식 울산대 교수가 퇴계학은 세계를 이(理) 중심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주자학을 계승했고, 율곡학은 세계를 기(氣) 중심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호상학을 계승했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김기주 박사는 퇴계학이나 율곡학이 비(非)주자학이라는 주장을 제기한 이들 논쟁을 통해 이들 학문의 탈(脫)주자학적 성격이 새롭게 조명됨으로써 조선 성리학 연구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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