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한문고전 우리글로 활짝…‘우리고전 100선’

  • 입력 2006년 1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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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전 100선 1∼6권/박희병 등 지음/각 권 282쪽·7500∼8500원·돌베개

고전은 어떻게 고전이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시대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이어야 한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오늘날 그런 작품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태반이 한문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또 한문으로 쓰인 명문장을 한글로 번역해 놓으면 그 뜻은 취할 수 있어도 문학적 묘미까지 살리긴 어려워 입에 착착 감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선집은 이런 이유로 그동안 외면받아 온 작품들을 고전의 반열에 올리겠다는 열정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논술시험을 겨냥해 쏟아져 나온 숱한 고전총서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1권인 ‘유금 시집-말똥구슬’만 해도 그렇다. 제목만 보면 현대 시인의 시집 같다.

그러나 유금은 18세기 실학자 유득공의 일곱 살 연상인 삼촌이며, 그 시집은 박지원의 서문을 통해 제목만 알려졌다가 2004년에야 발굴된 ‘양환집((낭,랑,량)丸集)’을 한글로 옮긴 것이다. 5권 ‘개구리 울음소리’의 장유나 6권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강물이 되어’의 신흠도 일반에게 낯선 문인들이다.

2권 ‘길 위의 노래’의 김시습이나 3권 ‘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의 이규보 정도가 국어 교과서에서 언급된 이들일 것이다. 4권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의 홍대용은 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작가들의 면모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용도 다르다. 대동강 위의 오리에게서 ‘새을(乙)’자를 발견하는 정지상의 기발한 발상이나 남녀의 애정을 곡진하게 읊은 황진이의 파격과는 거리가 멀다.

계절의 별미라기보다 늘 먹던 밥맛과 같고, 달짝지근한 코코아보다는 맹맹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숭늉 같다고 할까.

박지원이 ‘말똥가리는 자신이 굴리는 말똥구슬을 용의 여의주와 바꾸려 하지 않는다’며 중국의 내로라하는 한시 못지않게 조선의 정한을 잘 읊었다고 상찬한 ‘양환집’의 저자 유금의 시 ‘가을밤’을 읊어 보자.

‘온갖 풀에 서리 내리고/나뭇잎 시들어지려고 하네./기러기도 이미 다 떠났고/귀또리 소리도 성글어졌네./한밤중의 쓸쓸한 달/조금조금 뜨락을 비추며 지나네./집에서 우울함 풀 수가 없어/문을 나서 멀리 가고자 하나/멀리 어디를 간단 말인가/배회하다 도로 문을 닫노라.’

서얼 출신으로 불우하게 살다가 48세에 단명한 이 단아한 선비의 시에서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기형도의 시 ‘빈집’의 정한을 읽어 낼 줄이야.

유금과 달리 나란히 높은 관직에 올랐던 신흠과 장유의 글에서도 사람됨의 향취가 가득하다.

신흠의 ‘마음의 소중함’이라는 산문을 읽어 보자. ‘전할 수 있는 것은 말이고,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글이다. 반면에 전할 수 없는 것은 정신이고, 기록할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다. 따라서 말과 글은 거짓되게 지을 수 있지만 정신과 마음은 거짓되게 꾸밀 수 없다.’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로 꼽혔으면서도 ‘글이 그의 인품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들었던 장유의 글은 또 어떠한가.

‘내가 세상일을 살펴보니 나무 굽은 것은 보잘것없는 목수도 가져다 쓰지 않거늘, 사람 굽은 것은 아무리 잘 다스려지는 시대에도 등용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큰 건물을 한번 보아라. 마룻대나 기둥, 서까래는 물론 구름 모양이나 물결 모양의 장식까지 구부러진 재목을 쓴 경우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정을 한번 보아라. 공경과 사대부로서 높은 지위에 올라 조정에서 거드름 피우는 자들치고 곧은 도를 지닌 자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정녕 오늘날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들려줘도 부족함이 없는 글이 아닌가.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내겐 여종 달랑 하나 왔는데 / 마침 어젯밤 해산하였지. / 아픈 아내 살그머니 부엌에 들어가 / 밥하는 것 객이 알까 조바심 내네.

유금의 시 ‘이여강이 오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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