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엄지는 잊어요, 쿨한 칸나가 왔어요

  • 입력 2006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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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만화 속 여주인공들은 예뻤다. 청순함의 대명사이자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너무 완벽했기에 만화라는 사각 틀 속에 갇혀 있었다. 지금의 여성 캐릭터들은 다르다. 약점을 보여주고 욕망을 분출한다. 틀을 깨고 나와 현실에 손을 내민다. 다정함과 뾰로통함을 함께 지닌 우리의 여자친구처럼. 사진 제공 서울문화사·문학세계사
과거 만화 속 여주인공들은 예뻤다. 청순함의 대명사이자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너무 완벽했기에 만화라는 사각 틀 속에 갇혀 있었다. 지금의 여성 캐릭터들은 다르다. 약점을 보여주고 욕망을 분출한다. 틀을 깨고 나와 현실에 손을 내민다. 다정함과 뾰로통함을 함께 지닌 우리의 여자친구처럼. 사진 제공 서울문화사·문학세계사
“저 여자 주인공 어디서 많이 봤는데….”

힘겹고 고달픈 생활. 고아면 더 좋다. 괴롭히는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밝고 착하고 예쁘기까지 하다. 그녀를 돕는 멋진 남성과의 사랑.

“어디서 보긴, ‘캔디’잖아.”

만화 ‘들장미소녀 캔디’의 주인공 캔디. 1970년대에 탄생했지만 지금도 사랑받는 여성 만화캐릭터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언제나 밝은 이미지는 후대 만화는 물론 TV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무수히 차용된다. 이름하여 캔디형(形)이다.

그런가 하면 ‘엄지형’도 있다. 긴 생머리에 큰 눈망울이 청초하다. 사랑에 약하고 피동적이다. 사랑하는 오혜성을 두고 마동탁과 결혼한다.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었다.

캔디와 엄지는 만화에서 흔히 보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 이상적이지만 현실에 발이 닿질 않는다. 나름대로 매력 있지만 평면적이다. 대원씨아이의 최경화 씨는 “만화 속 여성은 순종적인 고전여인상이나 밝고 강한 캐릭터의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만화 속 여성캐릭터도 변하고 있다. 좀 더 주체적이며 욕망에 솔직하다. 입체적인 성격에 현실감이 묻어난다. 단순한 캐릭터로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12월 중순 개봉 예정인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비롯해 ‘순정만화’ ‘바보’는 모두 만화가 원작인 영화. 한 계단 진화한 캔디와 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만화부터 들여다보자.

○ 사랑에 매달리고 욕망에 충실한

배우 김아중이 엄청난 뚱보에서 날씬하게 변하는 프리뷰로 화제를 모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일본 원작은 1999년에 발매됐다.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성형수술에 대한 관심이 커질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 칸나즈키 칸나는 못생긴 외모 탓에 어릴 때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돈이 없어지면 범인으로 의심받고 레스토랑에선 화장실 옆자리만 차지해도 자기 탓을 하는 자학 여인. 그러나 한눈에 반한 미남 코스케 앞에 나서고자 수천만 엔을 들여 전신성형을 한다.

완벽한 미녀로 탈바꿈했지만 문제는 성격. 과거 버릇과 사고방식이 그대로 남아 미인답지 않은 행동거지로 실수연발이다. 코스케에게 당당히 사랑을 표현하지만 왠지 어색하다.

주인공 칸나는 이전의 전형성과 새로운 현대적 캐릭터가 뒤섞인 ‘과도기 캐릭터’다.

인생의 절대 기준이 사랑으로 좋아하는 남성에게 의존하는 엄지형 성격은 그대로 존재한다. 외모보단 마음이란 주제 역시 진부하다.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더라 식의 결말도 마찬가지.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시한다. 본능에 충실하고 감정에 솔직하다. 이기적인 미녀처럼 행동하려 하지만 뚱보 시절의 착한 맘을 결국 놓지 못하는 복잡한 면모도 드러낸다.

비슷한 맥락의 만화로는 갸나추 구미의 ‘OL 비주얼족’(시공사), 가와하라 가즈네의 ‘고교데뷔’(서울문화사), 이희정의 ‘내겐 너무 사랑스런 뚱땡이’(대원씨아이)가 있다. ‘내겐 너무…’는 ‘미녀는 괴로워’와 비슷한 설정으로 성형이 아닌 마법의 힘을 빌려 미인이 된다.

서울문화사의 순정만화 담당 장혜경 씨는 “일본은 주체적이고 솔직하게 욕망을 표현하는 여성 캐릭터를 다룬 만화를 ‘레이디 코믹’이란 하나의 장르로 대접한다”면서 “요즘 여성의 현실이 많이 반영돼 국내에도 공감한다는 팬이 많다”고 말했다. 총 5권으로 발행된 ‘미녀는 괴로워’는 아쉽게도 현재 절판된 상태. 하지만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만화대여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좀 더 현실적인, 좀 더 입체적인

마냥 착하지도 얄밉지도 않다.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남녀 관계를 주도한다. 솔직하면서도 복잡한 내면을 지녔다. ‘쿨’하되 경박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간다.

차태현 하지원 주연으로 조만간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바보-순정만화 시즌2’와 영화화가 예정된 ‘순정만화’. 이미 인터넷에선 대박을 터뜨려 작가 강풀을 스타로 만든 작품이다.

‘순정만화’ 여주인공 중 한 명인 한수영은 고교 2학년. 한 아파트에 사는 서른 살 총각 김연우와 사랑에 빠진다. 세상의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순수한 만남을 이어간다.

소심한 연우에 비해 사랑을 이끄는 건 오히려 수영. 부모에게 당당히 고백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것도 수영의 몫이다. 가족사의 아픔을 지녔지만 사랑을 통해 성장하면서 상처마저 치유하는 캐릭터다.

또 한명의 여주인공 권하경은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심층적인 내면을 지녔다. 옛 사랑에 대한 회한과 현재 사랑에 대한 망설임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사랑에 다소 피동적인 면을 보여주긴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선택한다.

‘바보’는 남녀 주인공의 성격이 한발 더 나아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순박하기만 한 바보 이승룡이 동화에서나 만날 법하다면 여주인공 석지호는 손 내밀면 닿을 듯한 현실적인 인물. 너무 강한 승룡 캐릭터에 밀리는 감은 있지만 있음직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건 지호다.

문학세계사의 김요안 실장은 “‘순정만화’와 ‘바보’의 수영이나 지호 등은 현실적인 시대감각이 그대로 반영된 캐릭터”라며 “만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 장르에서 기존의 여성상을 탈피하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가족과 함께 푸는 네모로직]12월 2일자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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