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이 진담이네…정종진교수 ‘속담사전’ 출간

  • 입력 2006년 11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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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자식 촌수보다 돈 촌수가 더 가깝다’는 속담이 있는데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부모 부양을 기피하는 요즘 세태에 맞는 비유 아닐까요.”

“이건 또 어떨까요. ‘돈다발로 쳐대는 매질 앞에는 끝까지 버티는 장사 없다’는 말. 금품 로비를 부인하다가 나중에 받은 사실이 들통 나는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을 언론을 통해 접할 때면 이 말이 생각나더군요. 무릎을 ‘탁’ 치게 만들지 않습니까.”

역시 속담 전문가답게 대화도 요즘 세태에 걸맞은 재치 넘치는 속담으로 시작했다.

청주대 국문과 정종진(54·사진) 교수는 남북한과 중국 옌볜(延邊) 등에서 우리 속담 5만여 개를 모은 2107쪽 분량의 ‘한국의 속담대사전’(태학사)을 28일 펴냈다.

흔히 ‘속담(俗談)’은 말 그대로 ‘저잣거리의 속된 말’로 여겨지지만 정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속담은 ‘조상들이 관(棺) 밖에 남겨 놓고 간 맛있는 지혜’이며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 순간 상황에 아주 기가 막히게 터져 나오는 추임새’라는 것.

그는 “경구(警句)나 명언은 걸러져 참맛이 없지만 속담은 쉽고 재미를 주면서 경구나 명언보다 더 치열하고 통쾌한 멋이 있다”고 말한다.

속담은 또 ‘유통기한’이 없다.

그는 ‘재수 없는 놈은 비행기를 타도 뱀에 물린다’, ‘여자 스커트와 연설은 짧을수록 좋다’, ‘제대 말년 병장은 장군도 못 알아본다’와 같은 요즘의 속담 아닌 속담을 예로 들며 “모두 현대에 맞게 새로 나온 말이지만 그와 비슷한 의미를 담은 속담은 과거부터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죽으려면 임금님 턱주가리는 못 찰까’가 그 예.

속담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언어 유산’이지만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유행되는 탓에 활자로 정리된 경우가 많지 않다. 정 교수는 누군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986년부터 속담을 모으기 시작했다.

남북한의 소설과 각종 사전은 물론 한의학 생물학 관상학 풍수지리학, 기존의 속담사전 등 다양한 분야의 책 3만여 권을 수집해 읽으며 속담을 찾아냈다. 또 시장과 농촌 등을 다니며 처음 듣는 속담도 발굴했다.

이렇게 모아 대충 원고지로 정리한 것이 8만여 장 분량. 4년 전부터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면서 가나다순으로 분류한 뒤 이번에 완성했다.

정 교수가 펴낸 사전은 수록된 개수와 분량의 방대함은 물론 속담에 맞는 용례를 단 것이 특징. 황석영의 장길산, 박경리의 토지, 북한 소설가 홍석중(벽초 홍명희의 손자)의 황진이 등 소설과 시 희곡 수필 등 다양하다. 성(性) 관련 속담도 여과 없이 수록해 재미를 더했다.

그에게 요즘 사회 현상에 알맞은 속담을 하나 비유해 달라고 했다.

“글쎄요, 워낙 많아서…”라면서 다음과 같은 속담을 소개했다.

‘채반(둥글고 넓적한 그릇)이 용수(술 등을 거르는 둥글고 깊은 용기) 되도록 우기지 말라.’

“안 되는 일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을 일컫죠. 현 정부의 인사 스타일과 비슷하지 않나요. 욕심이 사람 잡는다고 했지요.”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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