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책의 향기]수능은 다 잊고 책속에 푹 빠져보렴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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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이에게 책을 권해 보자. ‘책의 향기’는 각계 명사들이 편지에 실어 책을 권하는 ‘멀리 가는 책의 향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첫 회로 긴급구호활동가 한비야 씨가 논술 때문에 책을 참고서처럼 분석하고 외워야 했던 조카 나영에게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책 다섯 권을 추천했다.》

나영아, 그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정말 애썼다. 수능 치른 날, 시험 잘 봤냐고 물으니까 넌 이렇게 말했지. “나 오늘 답안지 안 맞추어 볼 거야. 하룻밤만이라도 편히 자고 싶어!”

그래, 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렴. 일단 큰일을 무사히 끝냈으니까.

이모가 고3 때도 잠 한번 실컷 자 보는 게 소원이었어.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전·후기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단다.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다고 좌절하며 몇 달 동안 네 외할머니 속을 얼마나 썩여 드렸는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수험생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못살게 굴면서 자기 스트레스를 푸는가 보다. 너도 고3 내내 식구들에게 짜증 부린 것 미안하다고 했지? 미안하긴. 머릿속이 압력밥솥처럼 안팎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꽉 차 있는데 그마저 못했다면 아마 터져 버리고 말았을 거야. 너희들을 가마솥 같은 교육제도에 집어넣고 푹푹 삶아 댄 어른들이 오히려 미안해.

나영아, 곧 정시 원서 써야 한다지?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과에 갈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만약 선택해야 한다면 이모는 네가 대학 이름보다는 원하는 전공을 택했으면 좋겠어.

이모 고3 때는 본인의 적성과 관심과는 상관없이 담임선생님이 가라는 대학에 가야 했단다. 철저히 간판 위주였지.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그때는 그랬어.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대학에 떨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니었으면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했을 거고, 지금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없었을 테니 말이야.

세상에는 ‘적당히 맞추어 살면 되지’라는 말은 없는 것 같아. 낙타는 사막에서, 호랑이는 숲에서 살아야지 제 타고난 기질과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거 아니겠니? 물론 호랑이가 사막에서도 살 수야 있지만 늘 맥을 못 추며 남보다 못났다는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게 뻔하잖아. 그치? 숲에 있었다면 천하를 호령할 동물의 왕이 말이야.

그러니 이모는 나영이가 사막의 낙타, 숲 속의 호랑이로 제자리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신나서 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뜨겁고 풍요롭게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하여간 나영아, 아직 기말고사 등이 남았지만 수능 전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을 테니 당분간 실컷 자고, 실컷 수다 떨고 영화나 책도 실컷 보려무나. 그러려면 용돈이 필요하다고? 알았어. 5만 원 줄게. 됐지? ㅋㅋㅋ.

― 언제나 널 보고 싶은 막내 이모가.

[1]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호시노 미치오 지음·이규원 옮김·청어람미디어) 요절한 야생사진가의 아름다운 사진과 소박한 글이 마음에 그대로 와서 박힌다.

[2]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지음·보림) 한 조선시대 선비의 책과 친구들 이야기가 창호지에 스미는 아침 햇살같이 잔잔하다.

[3]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지음·정성묵 옮김·두란노) 읽고 있으면 가슴이 콩콩 뛰면서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게 하는 기분 좋은 책.

[4]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 지음·양억관 옮김·나무심는사람) 우리가 왜 좋은 말과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말해 준다.

[5]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성석제 지음·창작과비평사) 줄거리도 줄거리려니와 작가 특유의 입담과 능청이 곳곳에 묻어 있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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