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영화 ‘어느 멋진 순간’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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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워커홀릭인 한 남자가 프랑스 시골에서 사랑을 찾는다는 영화 ‘어느 멋진 순간’. 사진 제공 20세기폭스코리아
영국 런던의 워커홀릭인 한 남자가 프랑스 시골에서 사랑을 찾는다는 영화 ‘어느 멋진 순간’. 사진 제공 20세기폭스코리아
이 도시에 사는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것을 확 때려치우고 떠나고 싶어질 순간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 건지. 그런데 뭐 딱히 다른 삶의 방법이 있느냔 말이다.

요즘 상영 중인 영화 ‘어느 멋진 순간’에서 말 한마디로 한순간에 런던 증시를 휘저어 놓는, 잘나가는 남자 맥스(러셀 크로)에게 다른 삶이 찾아왔다. 돈과 여자를 밝히고 ‘워커홀릭’(일중독자)인 그는 프랑스 시골 프로방스에 살던 삼촌의 사망 소식에도 유산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 변호사와 함께 열심히 계산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성과 포도밭을 둘러보러 갔다 콧대 높은 프랑스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와인에 취하고 사랑에 눈이 멀어, 그는 런던을 버린다.

2000년에 개봉됐던 크리스마스용 영화인 ‘패밀리맨’도 주제가 비슷하다. 화려하게 성공한 잭(니컬러스 케이지)이 천사의 장난으로 택하지 않은 길, 출세를 위해 헤어졌던 옛 여자친구와 결혼해 교외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사는 삶을 경험한다. 다시 현재로 돌아왔을 때 그는 옛 여자친구를 찾아간다. ‘스위트 앨라배마’(2002년)에서 주인공 멜라니(리즈 위더스푼)는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 멋진 남자의 청혼을 받고 옛 남편과 이혼하려고 시골 앨라배마에 갔다가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뉴욕의 삶을 버리게 된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사람이 대도시를 떠나 더 인간적인 장소에서 ‘가족’ ‘사랑’ 같은 근본적 가치의 소중함을 찾는다는 것. 삶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주는 향긋한 허브차 한잔 같은 느낌이랄까. 어느 정도 위안은 된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지 않는 ‘그 이후’는 어떨까.

‘어느 멋진 순간’의 진짜 명대사는 마지막에 나온다. 맥스의 변호사는 프로방스에 눌러앉겠다는 맥스에게 “지금 황홀하고 멋져 보이는 것도 곧 지루하고 끔찍한 일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운쉬프트’(고소득을 버리고 여유 있는 삶을 선택하기)해서 포도밭 일구며 한 여자만 보고 살아갈 맥스는 행복할까? 이 영화에서 맥스의 선택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새로운 사랑은 아옹다옹 싸움으로 얼룩질 것이고 포도 농사를 짓는 일도 장난이 아닐 게다. ‘스위트 앨라배마’의 잭과 멜라니는 다시 예전의 치열한 삶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어떻게 살든, 삶의 권태는 필연이다. 그럼에도 삶에 지쳤다면 이런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인생, 별거 없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는 거다.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나오는 니체의 말처럼.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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